언어의 한계

나의 지경을 넘어서

by 타마코치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만물을 이름 짓고 이들의 기능과 관계를 문장으로 나타낸다. 또한 언어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정의하고 상호 간의 역학을 서술하기도 한다. 인간은 성욕(Homo sexus)과 함께 언어적 본능(Homo loquens)을 갖고 있다. 인간의 이 두 가지 원초적 본능은 교감과 연결 욕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언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짓는 중요한 속성이다.


언어는 궁극적으로 소통과 협력의 수단이다. 깨어있는 동안 우리 머릿속에선 끊임없는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의 언어활동은 계속된다. 외부세계와 소통도 언어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말과 글로만 한정 지을 수 없다. 말과 글은 언어의 극히 제한된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대화중에 사용하는 비언어적 표현들은 말과 글의 범주를 넘어 있지만 언어의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해준다. 표정, 눈빛, 분위기, 말의 뉘앙스, 심리상태 등 여러 요소들이 포함된다. 인공지능 기술은 대화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비언어적인 정보를 분석해 화자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도록 발전하고 있다.


소통수단으로써 언어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언어를 통해 무언가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언어는 정확하지 않아서 전달될 때마다 원래의 사실(fact)은 왜곡이 일어난다. 전달자들의 주관이 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가에서도 법의 정수는 말이 멈춘 자리, 생각이 멈춘 찰나에 전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염화미소(拈華微笑) 등의 표현은 선조들이 터득한 지혜로운 언어생활의 단면을 보여준다.


보고 듣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의 언어가 그렇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여행하라고 한다. 유아기는 말할 것 없고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도 읽어준다. 통계적으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바른 언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문해력이 우수하고 사고력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아직 말을 못 해서 즉각적인 확인이 어렵지만 아이들은 이미 언어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잠들기 전 침대 맡에서 책을 읽어줄 때마다 숨죽이며 집중하던 아이들의 초롱한 눈빛을 떠올려보면 이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생각에서 말이 시작된다. 말은 파장이다. 파장은 에너지를 담고 있다. 즉 우리가 말에 담은 생각에 따라 그 에너지의 상태가 전달된다. 좋은 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고, 나쁜 말은 부정적인 기운을 세상에 뿌린다.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현재는 물론 미래도 점쳐 볼 수 있다. 입 밖으로 내는 말에 따라 그의 미래와 운명이 결정된다. 말에 대한 격언이나 금기를 떠올리지 않아도 부정적인 말을 하다가 어른들께 꾸중 들었던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파장의 주목할만한 특성은 공진(resonance) 현상에 있다. 초등시절 과학시간에 했던 소리굽쇠 실험을 떠올려 보자. 한 소리굽쇠에서 시작된 진동이 옆에 있는 굽쇠에게 전달되어 어느새 같은 소리를 내며 울린다. 당시에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여러 번 굽쇠를 두드리다가 선생님께 혼났었다.


후일 타코마 다리 붕괴사건에 대한 자료를 접하면서 공진현상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두 개체가 같은 주파수를 갖고 있어야 공진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실험에서 본 두 소리굽쇠도 같은 주파수를 같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끼리끼리 논다는 이야기다. 언어의 경우도 같은 의식 수준(주파수)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죽이 잘 맞는다. 나 스스로가 긍정적이고 높은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겠고,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이유이다.


종교나 수행을 하는 보편적인 방편 가운데 만트라(mantra) 수행이 있다. 만트라는 반복해 구음하는 좋은 문구나 짧은 말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옴마니밧메훔, 나무관세음보살 같은 것을 눈을 감은 채 소리 내어 반복하기도 한다. 기독교 교회로 치면 할렐루야, 아멘 같은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만트라 기도수행으로 놀랍고 기적 같은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우리 각자는 만트라 수행자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시작되는 나로부터의 모든 언어들은 생명력을 갖는 만트라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입으로 업을 짓는다 하여 구업(口業)이라 표현하였다. 주어진 입으로 선업을 지을지 악업을 지을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동물들도 기초적 형태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고도로 발달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고도로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지구 상의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바람이 나뭇잎에 부딪치는 소리, 새들 소리, 돌고래의 소리, 웃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는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이 소리들은 또한 긍정적 파장이 되어 생명지구(Gaia)를 정화시킨다. 서로 공진을 일으키며 양의 에너지를 증가시켜 지구 생태계에 생기를 돌게 한다.


당신은 어떤 만트라로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

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은 뒤집어 읽어도 새롭다.


"나의 세계의 한계가 나의 언어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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