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권하는 사회

중독사회에서 살아남기

by 타마코치

'석탄은 산업의 쌀'이라는 구호가 기억난다. 지금은 그 자리를 오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에너지원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 시대에 가정용 연료는 연탄이었다. 요즘은 자살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 사망원인이지만 그때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다. 겨울이 되면 '일가족 연탄가스 중독사'와 같은 헤드라인을 자주 보았다. 신문을 통해 '中毒'이라는 한자어를 처음 마주했을 때 왠지 두려웠다.


언젠가부터 중독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알코올, 도박, 마약 등의 중독은 고전이다. 스마트폰 중독, 게임 중독 등 그 가짓수도 늘어가고 있다. ‘중독사회’라고 이름 붙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중독사회란 다양한 중독에 물들어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말한다. 마치 사회 전체가 중독 행위로 움직이는 것 같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중독은 일종의 강박적 병리적 행위다.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땐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게임중독을 경고하기 위해 PC방을 취재했던 뉴스 리포트 기사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창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PC방의 전체 전원을 내리자 여기저기 손님들의 욕설과 분노가 터져 나왔다. 방송이 나간 후 SNS에서조차도 취재기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기자의 잘못된 취재 방식에 대한 분노 이면에는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공황상태에 크게 공감대가 형성됐다. 취재기자가 몰매 안 맞은 게 다행이라는 취지의 글들이 많았다.


게임의 예를 들었지만 증상이 약할 뿐 우리는 중독의 노예다. 일중독, 속도 중독, 유행 중독, 관계중독 등에 젖어있다. 중독의 기제는 두려움이다. 연구에 따르면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이와 같은 중독사회를 만든다. 우리나라는 중독적으로 경쟁이 치열한데 이것은 전쟁, 단기간 고도의 경제성장, 금융위기 등 굵직한 사건들로 얻은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성원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면 그 피로 비용이 중독으로 나타난다.


중독에 길들여지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른다. 마치 독이 될지 약이 될지도 모르면서 닥치는 대로 약초를 캐는 꼴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고 더 많은 소통과 더욱 빠른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해하지 않는다. 더 큰 행복을 줄 파랑새를 찾아 노예처럼 중독적 삶을 이어간다. 중독자들은 중독상태를 부정한다. 중독은 바이러스처럼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벗어나려면 자신이 중독상태임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연된 중독 신드롬도 사회적 측면에서 문제 인식이 먼저 공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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