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샷

by 타마코치

아 아직이야, 잠깐만..(찰칵)

됐어. 이제 먹어도 돼.


식당에서 자주 보는 낯익은 장면이다. 개인 미디어 시대가 만들어낸 이런 풍경은 마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감사하며 안녕을 의탁하는 경건한 기도 의식과 같은 느낌이다. 예상과 달리, 인증샷을 영어로 'Proof shot'이라 하지 않고 'Let's take a picture(photo).'(우리 같이 찍을까?)라고 말한다. 인증샷이라는 말 속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단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동의나 지지가 없을 때 혼란을 겪거나 공황에 빠진다. 왕따가 고통스러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행, 전통, 관습을 따라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심리적 안정을 취한다. 인증샷도 이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경치, 맛있는 음식도 인증샷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타인의 동의가 필요한 인증샷 찍기는 이 시대 우리들의 외로움과 불안의 반증이다. 절해고도에 남겨져도 인증샷은 계속될 것이다.


라캉(Jacques Lacan)은 이러한 심리적 기제를 '동일시'라고 말한다. 그는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을 '거울 단계'로 명명하였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기 자신인 줄 안다. 또한 거울을 보면서 주변에 비치는 사람을 뒤돌아 본다. 정리해보면, 거울 속의 비친 주관적인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동일화를 통해 구성된 이상화된 허상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지지와 동의를 요청하게 된다는 것이다. 셀카 보정앱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상화된 자신의 이미지는 현실 속 실재 모습이 낯설고 불편하다. 라캉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타자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욕망이 낳은 상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정리하였다.


한동안 소셜미디어 단식운동이 불붙은 적이 있다. SNS로 연결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들은 소홀해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정보가 넘쳐흘러 만들어진 바다에서 익사할 지경이다.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정보의 편식은 더욱 뚜렷해져 인간관계는 되레 더욱 편협해졌다. 유행어 중에 '관종'이라는 말이 있다. 관심종자라는 뜻으로 보통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본래의 의미만 놓고 보면 인증샷을 올리는 우리는 누구나 가벼운 관종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 경쟁이 경기장만 바꿔서 계속되는 느낌이다. 여전히 우리는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하고 그러기 위해 인증 행위는 계속된다.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낸 허상과 오프라인 현실의 차이로 공허감을 더 크게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흐름을 거스르기도 어렵다. 통화만 하면 됐지 스마트폰이 뭐가 필요해라며 폴더폰을 고집했던 나이 많은 선배들도 침침한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 주도적 스마트 라이프...

고백하자면 나부터 시작해야 할 숙제이다.



참고문헌: 은유와 마음 - 법명

사진출처: 스카이스캐너 박은영님의 기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