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란 무엇인가?

내가 중년임을 느낄 때

by 타마코치

지난해 말 대학 동창들 모임이 있었다. 나는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여러 개의 메시지가 연이어 들어왔다. 술자리에서 찍은 중년 남녀들의 사진이 톡방에 올라왔다. 술기운에 불그레한 얼굴에 히죽 웃고 있는 동창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감추지 못해 불룩한 뱃살에 숯이 없는 머리, 조금 있으면 손주들도 볼 수 있을 듯한 모습이었다.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내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나도 중년임을 깨우친다.


매일 아침 면도를 위해 화장실 거울에 설 때마다 나는 놀란다. 거울 안 쪽에는 언제나 부스스한 얼굴의 중년남이 나를 보고 서있다. 낯설다. 그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공손해진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아저씨 누구세요?" 얼굴 피부이식 수술에서 회복해 붕대를 막 풀고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주 서있는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얇은 거울엔 수십 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본 얼굴을 되찾으려 거품을 바르고 면도기로 밀어 보지만 여전히 그는 거기 서있다.


중년에 접어든 남자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은 아마도 '아재'일 것이다. 원래 아저씨를 나타내는 방언이 언젠가부터 중년남을 폄하해 부르는 단어가 되었다. 여성으로 치면 '김여사'쯤에 해당한다. 한동안 김여사 시리즈가 유행하더니 아재 시리즈도 뒤를 따랐다. 아재는 일종의 부드러운 핀잔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같은 핀잔에 예민해진다. 어디 가서 아재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중년들은 조심한다. 물론 그 눈치마저도 없는 진짜 아재들도 있다.


중년과 아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자기 관리'로 귀결된다. 여기서 자기 관리는 중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지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적정선 같은 것이다. 과유불급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80%의 법칙'을 따른다. 이 숫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내려가야 한다. 식사량도 정량의 80%, 일도 80%, 노는 것도 80%, 관심도 80%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무리가 없다. 이 룰을 어기는 순간 아재라고 핀잔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언제 중년임을 느끼냐고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재미있는 대답 몇 가지를 기억한다. 깜빡거리는 파란 신호등에 호기롭게 뛰어가다 중간에 빨간불로 바뀔 때, 아침에 일어나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을 때, 비아그라의 효능에 귀를 쫑긋거릴 때 중년임을 느낀다고 했다. 그대는 언제 중년임을 느끼는가?


나이가 들면 뇌의 기능이 떨어진다. 기억력, 운동신경 모두 예전 같지 않다. 뇌세포는 점차 손상되며 이것은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의 뇌과학은 다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모든 뇌세포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을 관장하는 부위인 해마는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뇌가소성'이론이다. 단,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다. 뇌와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에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 사람과의 관계 형성 등을 통해 뇌의 신경망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다. 뇌의 기능을 놓고 보면 중년의 뇌는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판단력, 현명함 등에 있어서 젊은 뇌보다 뛰어나다. 전체적인 가성비로 보면 중년의 뇌가 더 지혜롭고 수행력이 높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자극은 살아오던 방식에서 벗어날 때야 가능하다. 80% 법칙은 지키되 새로운 경험, 새로운 방식에 대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런 행동양식 때문에 철이 없다는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철없는 생각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다면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중년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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