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C의 이야기
내가 C를 알게 된 건 재즈 덕분이었다. 그가 왜 중학교를 그만두고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는지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그는 오래전 밤무대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결혼해 딸도 하나 두었다. 내가 C를 만날 무렵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의 딸내미는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다. C의 아내가 그를 떠난 후부터다. 아마도 그의 중독에 가까운 음주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C는 색소폰을 잘 불었다. 소싯적에 밤무대에서 연주할 때 손님들에게 꽤나 인기 있었다. 더 이상 밤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후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무대에서 선 후배의 연주는 예전의 솜씨가 아니었다. C의 기량마저도 앞서고 있었다. 그때 C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야.. 오랜만이다.
아.. 형! 잘 지내셨어요?
나팔 소리 좋은데? 뭘 좀 배웠냐?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형님이 단박에 알아주시네요..
그래, 뭘 배웠는데?
한동안 재즈를 배웠어요.
재즈? 그걸 배우면 소리가 이렇게 달라져?
재즈의 대가 S선생님께 사사하였어요. 형님도 받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C는 후배의 소개로 재즈계의 대부를 찾아갔다. 밤무대 생활도 접었다. 그의 지도를 받아 매주 한 번씩 화성법과 스케일 등 재즈 이론과 실기를 병행해 공부했다. 매일 한강 둔치나 조용한 산에 가서 연습을 거듭했다. 이미 색소폰 연주기술은 몸에 배어서 진도가 빨랐다. 이렇게 1년여의 자신과의 싸움 끝에 C는 재즈맨으로 거듭났다. C의 스승은 국내 재즈계의 일 세대 원로였다. 소싯적에 그의 재즈 피아노 연주는 명성이 자자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후학 지도와 재즈 보급에도 힘을 쏟고 있었다. 지금이야 해외파들을 중심으로 많이 보급이 되었지만 당시 국내 재즈 연주자 가운데 그의 지도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후 C는 재즈 아티스트로서 본격 활동에 나섰다. 작곡도 하고 음반도 발표했다. 재즈 연주자들과 잼 세션을 하는 등 활동도 활발했다. 자신의 첫 앨범도 발표했는데 사실 재즈는 대중적이지 않아 앨범이 그리 많이 팔리진 않았다.
내가 재즈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건 C가 앨범을 발표한 이듬해 즈음이었다. 케니지의 음악들로부터 시작된 관심이 재즈의 거장들의 연주로 확장되었다. 특히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즈, 찰리 파커, 데이브 브루벡 등 다양한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었다. 재즈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빅밴드 시대부터 스윙, 하드밥, 퓨전 등 결이 다른 연주도 접하게 되었다. 귀에 끌리는 색소폰 연주에 집중하다가 점차 피아노, 트럼펫, 베이스 등 다른 악기들 연주도 관심 갖게 되었다. 국내 연주자의 앨범은 누가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CD를 뒤적거려봐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정식의 앨범을 포함해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난 C의 앨범을 발견하였다.
그의 유일한 앨범에 실린 음악은 우수에 젖어 우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가 궁금했다. 일을 핑계로 앨범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 전화를 해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반갑게 받아주었다. 이후 우리는 재즈 이야기를 나누며 급속도로 친해져 몇 번인가 그의 공연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연습실 겸 거처로 사용하는 강남에 있는 그의 골방을 방문하기도 했다. C는 진정한 재즈맨이었다. 종일 음악을 생각했다. 그는 늘 마이크로 녹음기를 지니고 다녔는데 악상이 떠오르면 꺼내 들고 흥얼거리며 녹음해두곤 하였다.
재즈에 대한 흥미가 커지면서 나는 재즈 화성학과 '리얼북'도 입수해 들여다보곤 했다. 리얼북은 재즈 연주자들이 사용하는 비공식 악보 모음집이다. 거기에는 아주 기본적인 음정만 나와 있고 그걸 어떻게 연주하는가는 연주자의 몫이다. 사실 재즈 같은 곡이라고 해도 연주 때마다 똑같이 연주하는 경우는 없다. 말하자면 매번 닮은 듯 다른 연주이다. 화성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음악 하는 사람들, 특히 재즈 연주자들을 존경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화성, 화음, 코드 진행법 등을 공부하고 체득해 연주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에 더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명한 재즈 연주자들 중에 학력이 낮고 악보 까막눈이 많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밤무대 연주자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고 C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C의 학력이 중학교 중퇴라는 사실을 알고 재즈 이론을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풀어놓는 화성 이론과 음악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식견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어느 날인가 알고 지내던 외국인 친구와 그의 공연장을 찾았다. 그녀는 지방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는데 재즈를 좋아했다. 한국에서 지낸지는 몇 년 됐지만 한국말은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 C와 합석했다. 함께 술을 마시며 공연 이야기, 음악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헤어졌다. 다음 날 C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그녀를 소개해달라며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형은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데 전화통화를 어떻게 하려 하느냐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딸 있는 돌싱이 미혼 외국인 처녀를 소개해달라는 C가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C는 그녀의 근무처가 ㅇㅇ대학이 맞느냐고 말하고는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C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타마야 나 그녀랑 사귄다.'라고 말하며 놀라워하는 내게 경과를 이야기해주었다. C는 그녀의 근무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영상전화시대도 아닌 그 시절에 어떻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암튼, C는 몇 마디 하다가 전화를 끊고 버스를 타고 무작정 그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고속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그곳에서 그 둘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C는 세간을 정리해 그녀 곁으로 거처를 옮겼다. 나중에 그녀에게 C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를 물었더니 멋쩍게 "I don't know"만 반복했다. 재즈로 이어진 사랑의 위대한 힘이라고 해야 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