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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Feb 20. 2019

오랜 기억 속의 월남

베트남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월남이라는 나라 이름이다. 초등시절 이념교육이 한창이었을 때 월남, 월맹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한과 북한쯤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당시의 반공교육은 월남 패망의 교훈에 맞춰져 있었다. 무능한 정부, 부패한 사회지도층으로 인해 나라가 망했다는 게 주요 줄거리였다. 특별 반공교육 등의 명목으로 대한뉴스에서 제작한 영화를 전교생을 대상으로 반복해 상영하곤 했다. 나라를 잃고 탈출한 보트피플의 비참한 모습이 말미에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당시 주변에 월남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작은 식당에 어느 날 일하는 아줌마가 새로 왔다. 깡마른 외모에 광대가 약간 나왔고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했을 뿐, 어린 나는 그녀가 여느 한국사람과 다름을 느끼지 못했다. 한국말도 잘했기 때문에 그녀가 월남 사람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계속 알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이 악의 화신처럼 내몰았던 호찌민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이다. 또한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어떻게 베트남을 침공해 들어갔는지, 우리나라 파월장병들은 그곳에서 미군들과 함께 어떻게 악랄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실로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던 서방국가중에 하나인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고 2차 대전을 전후해 일본의 지배를 잠시 받기도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는 지리적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소련과 중국을 견제할 방어선 구축이라는 표면적 이유로 미국은 이 지역을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두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민간인 학살, 고엽제 살포 등으로 세계무대에서 비난을 피하지 못했으며 국내에서도 반전운동 확산 등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베트남의 '도이머이'정책에 따라 베트남인민공화국은 세계로 문호를 개방했다. 이후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이면서도 경제개발을 통해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IT스타트업들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베트남 국민의 평균연령은 약 30세로 동남아에서 창업열기가 가장 뜨거운 나라이다. 이러한 인구황금기의 구조가 2040년 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어 향후 경제성장의 잠재력은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성과에 감사하며 현지의 한국기업들에 소속돼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한국말, 한류 문화를 좋아하며 한국을 동경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지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고 용서한 것일까? 베트남 현지에서 오래 생활한 교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겉으로 순진하고 유순해 보이는 것과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민족적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에 집착하진 않지만 잊지 않고 있다고도 말한다.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구 상의 어떤 개인과 민족이든 그 정체성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차별과 증오 대신 평화와 번영이 지속 가능한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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