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급 발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마코치 Feb 20. 2019

트로츠키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내가 다시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들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전 나타샤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을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 1940년 2월 27일 ,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레온 트로츠키





휴가 기간 넷플릭스를 통해 '트로츠키'를 만났다. 이 8부작 드라마가 발표된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트로츠키는 유대인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고 적군을 창건해 내전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 레닌 사후 트로츠키는 '연속 혁명론'으로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계속 진전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반면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을 공고히 한 뒤 공산혁명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교리가 마르크스주의를 국가사회주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며, 국가적 자만심과 소련 관료집단의 오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과도하게 관료적인 공산당 조직의 경직성을 씻어내고 ‘민주적 집중 주의’를 복원시키려 했다. 스탈린 치하에서 혁명의 유산이 가혹한 독재와 숙청, 공포로 지탱하는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되고, 결국 특권층의 부패와 타락, 경제 위기로 얼룩진 채 소련과 사회주의권 붕괴로 이어지는 동안 ‘트로츠키주의’는 반혁명주의 낙인이자 금기였다. 트로츠키의 주장은 서유럽 공산주의 지식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나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다.


1936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가족과 측근 대부분을 차례로 잃고 트로츠키는 해외로 망명한다. 1940년부터는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프리다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부부의 도움으로 그녀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나 그해 8월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멕시코의 스탈린주의자 라몬 메르 카데르에 의해 등산용 피켈로 암살당했다.


트로츠키는 역사의 진보란 맨발로 힘겹게 두어 걸음 나아간 뒤 다시 뒷걸음질하면서도 끝내 성지를 향해 다가가는 순례자들과 같다며 끝까지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트로츠키는 같은 해 2월에 자신의 유언장을 작성해두었다.


트로츠키는 혁명의 최종 목적을 권력에 두지 않았다. 혁명의 실질적인 주역이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누릴권좌를 레닌에게 넘긴다. 드라마 속에서는 멕시코 망명지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자는 이런 그의 태도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받고 희생되는 것을 비난하는 대목이 나온다. 트로츠키의 이 같은 행보는 일견 체 게바라의 그것과도 통한다. 체 게바라 역시 혁명이 완성되고 나서 외무장관에 잠시 머물다가 다 내려놓고 혁명의 최전선으로 향했다. 어쩌면 그들은 지구시민의 유토피아적 해방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드라마는 트로츠키의 인간적인 모습을 심도 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 미국 중심의 영상물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만난 러시아 드라마는 단연 돋보였다. 트로츠키 역을 맡은 콘스탄틴 하벤스키는 러시아에서 사랑받는 국민배우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 화면의 구성과 연출 모두 안정적이며 흡인력 있게 시청자들의 주의를 빨아들인다.


역사는 말 그대로 승자(he)의 이야기(story)를 기록한다. 러시아 혁명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의 업적은 현대에 들어서며 재평가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레닌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혁명의 악마'가 동시에 방영되었는데 '트로츠키'가 '혁명의 악마'보다 시청률이 높았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 세계는 불평등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인간의 욕심과 결합된 체제의 한계적 왜곡을 트로츠키는 예견했던 것일까? 이제 며칠 뒤 베트남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게 될까?






<참고 문헌>


위키피디아(2019), 레프 트로츠키 [cited 2019. 2. 20]
https://ko.wikipedia.org/wiki/%EB%A0%88%ED%94%84_%ED%8A%B8%EB%A1%9C%EC%B8%A0%ED%82%A4 


한겨레(2017) 러시아혁명 100년, 다시 만나는 트로츠키 [cited 2019. 2. 20]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0413.html#csidxb644c8dabdd95b08749bec7f043ede8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 기억 속의 월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