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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Feb 21. 2019

푼 포즈

phoons

여행은 제2의 독서라고 말한다. 일상을 벗어나 집약적으로 쏟아지는 낯선 경험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여행의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다. 지금은 굵직한 사항만 확인하고 나면 나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꼼꼼하게 준비해도 빈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조금 느슨하게 준비하고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게 낫다. 이렇다 보니 가족여행 다닐 때 아내가 수고를 많이 한다. 가족들을 위해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특별한 여행 목적이 아니면 우리는 자유여행을 선호한다. 빡빡한 일정으로 많이 보는 것보다 덜보고 구속되지 않는 일정을 선호한다. 예전에 프라하를 자유여행으로 간 적이 있었다. 걸어서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피곤하면 숙소에 들어와 쉬었다. 출출하면 동네 슈퍼에 가서 주전부리 사다 먹곤 했다. 하루는 아예 관광 대신 숙소 근처 카페에 죽치고 앉아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종일 책을 읽으며 소일했다. 오후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코스트코 슈퍼에 매번 들러 갔더니 매장을 지키는 할머니가 새로 이사 온 부부냐고 물어서 한바탕 웃기도 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몸은 좀 피곤하지만 여행의 풍요로운 기억으로 에너지가 충전된다. 여행지에서 찍은 재미있는 사진이나 영상은 당시의 즐거운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오래전 우연히 푼(phoon)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이 곳에는 앞으로 달려가는 듯한 독특한 포즈의 사진들이 올라온다. 푼이라고 명명된 이 포즈로 찍은 다양한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촬영자들의 재치가 느껴진다. 참가자들은 이 포즈로 사진을 촬영하면서 묘한 일탈과 연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젠 유튜브를 중심으로 동영상이 주류가 되었지만, 푼 사진이 공유되는 홈페이지는 여전히 재치 있는 사진들이 업로드된다. 나도 아주 오랜만에 관광지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포즈를 잡았다. 두 아들은 이제 남부끄럽다며 내 곁을 슬슬 피했다.


홈페이지에는 푼의 유래에 대해 설명되어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취했던 사진 촬영 포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푼이라고 이름 지었다. 사이트의 주인은 성인이 된 이후 출장지에서 쇼핑몰을 걷다가 20여 년 전 찍었던 푼 사진을 떠올리고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초대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방문자들로부터 푼 사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재치 넘치는 푼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아무 의미 없이 시작된 이 사진은 단순한 여행 사진일까? 예술적인 표현일까? 아니면 반항일까? 사진 기고자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사진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게 한다. 사실 공공장소에서 푼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은 시선이 집중되는 일이다.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이목을 감당해야 한다. 간혹 아주 위험한 모습으로 촬영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푼 사진 촬영의 안전 가이드라인에 위배된다.(촬영 시 가이드라인 참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또한 자기 개성에 대한 표현의 욕구일 것이다. 1인 미디어가 발달해가며 강화되는 연결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에 대한 욕구의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http://www.phoo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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