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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Feb 23. 2019

벽제의 기억

삼송리, 벽제에서 처음 스케이트를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같은 학교 동급생들 몇 명을 어머니 한 두 분이 인솔해서 버스를 타고 가곤 했다. 불광동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논밭이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곧 온통 논과 밭이 나왔다. 물을 댄 논은 밤새 얼려져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논 주인에게 스케이트장은 농한기의 과외수입이 되었다.


종로 3가에 가면 체육용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스케이트를 만들어 상품화한 사람의 이름을 딴 '전승현'이라는 메이커가 있었고, '세이버'라는 메이커도 있었다. 전승현은 모든 어린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스케이트였다 워낙 고가여서 선뜻 사주는 부모는 몇 안됐다. 부모님이 스케이트를 사주셨던 날을 기억한다. 최고급품 '전승현'은 아니었지만 스케이트를 품에 안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 전날은 벌써 마음이 들떴다. 스케이트는 롱과 피겨 두 종류였다. 롱은 남학생용, 피겨는 여학생용으로만 알았다. 사내아이가가 피겨를 신고 나타나면 놀림감이 되었다. 스케이트 종목에 따라 나눠진다는 건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스케이트장에 가면 커다란 트랙을 따라 얼음을 지치며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가운데는 초보자들이 어정 어정대며 연습을 하였다. 또 가끔은 피겨스케이팅 기술을 연마하는 학교 대표선수들도 연습을 하곤 했다. 빙글빙글 돌거나 가벼운 회전 점프를 하는 모습은 오르골 인형 같았다. 스케이트장에는 썰매족들도 섞여 있었다. 나무를 덧댄 다리에 세로로 철사를 박아 넣어 날을 삼았다. 어떤 썰매는 롱 스케이트에서 떼어낸 날 한쌍을 못으로 고정시킨 고급품이었다. 스케이트장은 보통 오전에 부지런을 떨며 갔다. 밤 추위로 자연스럽게 얼린 곳이다 보니 오후로 접어들면 스케이트장은 가장자리부터 녹아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공원묘지로 많이 정리되었지만, 서울시민들에게 벽제는 화장터와 공동묘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초상을 치르게 되면 그곳에서 시신을 화장을 하거나 공동묘지에 묻었다. 추석 명절이면 벽제로 이어지는 비포장길은 버스, 택시, 작은 포터 트럭 등이 사람과 뒤엉켜 만원을 이뤘다. 대가족이 버스를 타고 벽제로 성묘를 가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간단하게라고 하지만 차례음식과 제기를 나눠 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은 막내 삼촌의 덕을 보았다. 막내 삼촌은 정비소에서  운전과 차량 정비 기술을 도제식으로 배우고 있었다. 명절 때 정비소에 부탁해서 포터 트럭을 빌려 왔다. 트럭 짐칸에 군용 차량처럼 쇠파이프 골격을 대고 비닐커버를 씌웠다. 친척들과 트럭 뒤 천막 칸에 제수용품과 함께 몸을 실었다. 간혹 교통경찰관의 검문에 걸리기도 했지만 명절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봐주었다. 그러나 사실 바깥이 보이지 않게 덮여있는 트럭 화물칸을 한두 시간 타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속이 메슥거려 올라오는 멀미를 이겨내려고 비닐커버 사이로 눈을 내놓곤 하였다.


어쩌다가 벽제에서 찍은 흑백사진들을 보면 기억들이 새롭다. 이젠 지금의 나보다 어린 사진 속 친척 어른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묘를 마치고 무덤가에 앉았던 촉감, 풀냄새, 송편의 솔향들이 아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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