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산다는 것은 6
개리는 쾌활하고 명랑했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 먹성도 좋고 욕심도 많다. 비글은 사고를 많이 친다. 뭔가 잘못해서 꾸중이라도 하려 하면 벌써 귀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주인의 눈치를 살핀다. 비글 견주들은 그 표정에 마음이 녹는다. 영악한 녀석이다.
말리는 개리와 성격이 완연히 달랐다. 산책을 안 시켜주거나 안 놀아주면 밥을 안 먹기도 한다. 밥도 느긋하게 먹는 편이었다.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살 신분이 아닌데 하는 표정마저 보이는 듯했다. 그런 표정이 가끔은 우울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개들도 파양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따지고 보면 말리와 개리는 원주인에게 한번, 우리 집에서는 안에 있다가 마당으로 가면서 한 번 해서 모두 두 번 쫓겨난 셈이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좀 있었을 것 같았다.
털갈이를 하는 환절기가 되면 마당은 개털이 날린다. 개리는 단모여서 그나마 덜했지만 말리의 긴털은 눈처럼 수북하게 마당에 쌓였다. 샤워시키고 말리면 집안과 밖에 옷에 개털이 붙었다. 반려동물과 지내려면 개털이 내 털이려니 생각하고 무심하게 동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집 뒤 산책로를 따라가면 인적 없는 공터가 있다. 가끔은 그곳에 가서 목줄을 풀어준다. 개리는 온 산을 휘젓고 다니며 잡동사니를 노획물로 물고 오기도 한다. 말리는 겁이 많아서 내가 보이는 곳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몇 해 전 여름, 강릉 사근진 해변이 반려견을 데리고 입장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견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쏟아지는 민원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원래대로 운영을 되돌렸다. 개들도 수영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 두 녀석은 물을 무서워했다. 인적 없는 해변에서 몇 번 뛰어논 적이 있었음에도 물 가까이 가자 안 들어가려고 버둥거렸다. 억지로 데리고 들어가면 필사적으로 해변으로 기어 나왔다.
귀족견 말리는 귀족 대접을 못해준 주인을 만나서 일찍 떠난 것 같다. 그래서 좀 많이 미안했다. 대수술이 필요한 경우 서울의 수의대학병원에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동물 의료보험이 없어서 수술비도 많이 든다. 거기에 개를 데리고 서울로 오가야 하고 치료기간도 길어져 웬만하게 형편이 아니면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말리는 수술을 해도 회생 가능성이 낮아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개리와 말리를 입양할 때 언젠가 헤어질 날이 떠올랐다. 그래서 정을 많이 안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덤덤할 줄 알았는데 막상 말리와의 이별을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리자 눈물이 났다. 안락사를 앞둔 반려견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견주들의 이야기를 수의사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쓰다듬어 주며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해주고, 눈 맞추고 흐느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같이 눈물이 난다고 한다.
말리가 안 보여서인지 명랑하던 개리도 며칠 풀이 죽은 듯했다. 개리도 말리가 떠난 걸 알고 있는 걸까? 이후 개리는 혼자 말리 몫까지 마당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말리는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웰시코기 귀족견 신분을 회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안녕 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