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산다는 것은 5
키우던 개가 죽었다. 2년 전의 일이다. 6살이 되던 해였다. 병사였다. 개의 평균수명을 생각해보면 단명이다. 이름은 말리. 집을 지은 뒤 우연하게도 파양 된 녀석을 우리가 맡았다. 말리는 웰시코기다. 지인이 키울 요량으로 괜찮은 혈통을 수소문해 집에 들였다가 하루 만에 쫓겨났다. 부모님과 상의가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개랑 나가서 살던지, 개를 내보내던지 선택하라고 노발대발했던 모양이다.
슬픈 표정으로 넉 달 된 개를 안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마당을 지킴이를 한 마리 키울까 고민하던 차에 이쁜 녀석이 군식구가 되었다. 개가 어려서 집안에서 2주 정도 같이 지내도록 했다. 나를 포함해 강아지를 키워보기는 처음이어서 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가족들에게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색다른 경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한 달쯤 뒤 그녀는 또다시 개 한 마리를 안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근무하는 학교 캠퍼스에서 한 달여를 배회하던 녀석을 안고 온 것이다. 비글 믹스견이었다. 개를 키우진 않지만 친구 '고독한 수의사'로부터 3대 악마견이라는 악명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 캠퍼스는 마을과 동떨어져 있다. 생후 5달 정도로 추정되는 이 녀석은 아마도 학생이 키우다가 감당하지 못해 캠퍼스에 버려진 것 같았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다. 접시에 코를 박고 숨도 안 쉬고 사료를 먹다가 목이 메어 컥컥 댔다. 그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지금도 급하게 먹는다. 우리가 안 맡으면 동물보호소로 갈 형편이었다. 동물보호소에서도 정해진 기간 내에 새 주인을 못 만나면 도살된다. 결국 우리 집 마당은 이 두 녀석의 공동경비구역이 되었다.
이름도 지어줬다. '리'자 돌림으로 웰시는 말리, 비글은 개리로 지었다. 말리와 개리는 성격이 달랐다. 개들도 나름 개성(?)이 있다. 웰시코기는 개그맨 주병진이 여러 마리를 키우는 모습이 TV 프로그램에 방영되기도 했는데, 작위를 받은 영국 여왕의 수행견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 성품이 기품 있고 귀족적이다. 말리 스스로도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개리는 천방지축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명랑했다. 어릴 땐 작아서 몰랐지만 이 두 녀석은 중형견이다. 성견이 되면 몸무게가 15Kg 정도에 이른다.
개를 마당에 키우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사료값도 꽤 들어가지만 집을 비울라치면 누구에게 부탁을 하고 가야 한다. 이따금 병원에 데리고 가서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 병원에 이 두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부터는 아예 '고독한 수의사'를 불러 왕진을 부탁하고 있다. 집이 큰 길가에 있다 보니 사람이 지나가면 짖어댄다. 개라도 동반하면 개 짖는 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럽다. 그러다가 심지어 둘이 싸우며 짖기도 했다. 마치 왜 네가 더 크게 짖느냐며 으르렁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는 동사무소에서 공무원이 찾아왔더랬다. '개들 좀 안 짖게 해 주세요. 민원이 들어와서요.' 말하면서도 뻘쭘한 표정이었다. 결국 짖음 방지용 전기충격 목걸이를 채웠다. 말리는 좀 덜 짖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개리는 영리하고 집요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수위보다 살짝 낮게 작은 늑대울음 처럼 웅얼대듯이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덩치가 커져서인지 내성이 생긴 건지 개나 사람이 지나가면 마구 짖어댔다. 비글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쩌렁쩌렁한 짓는 소리, 늑대울음 비슷하게 울어대는 소리가 괴롭다. 그런데 안 그러던 말리까지 합세해 늑대 처럼 울어댈 때가 있다. 창 밖을 내다보면 여지없이 개장수의 트럭이 지나갈 때이다. 말리와 개리도 트럭 뒤켠 케이지에 갇혀 실려가는 개들의 운명을 알고 슬퍼하고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개 주인이 착각하는 게 있다. 아무리 작아도 개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개가 옆에 오기만 해도 놀라거나 패닉이 되곤 한다. '이 개 순해서 안 물어요'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개가 주인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개를 싫어하는 택배기사들은 개가 있는 주택에 배달 다니는 게 곤욕이다. 우리 집도 택배기사가 배달품을 대문 안쪽에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독 한 택배기사 아저씨는 개들의 공동경비구역인 마당을 유유히 지나 현관 앞에 두고 가는 것이다. 한 번은 현관에 물건을 두고 나오는 그 아저씨와 마주쳤는데 이 녀석들이 짖기는커녕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개 간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개들과 친분을 쌓아두었던 것이다. 일종의 통행세라고 해야 할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