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 없는 독일마을

주택에 산다는 것은 4

by 타마코치

가족 캠핑을 막 시작할 무렵 남해 독일마을에 갔었다. 차 안 가득 휘성의 'insomnia'가 울리는 가운데 아침 안개 사이로 독일마을이 동화처럼 펼쳐졌다. 막 배달된 병우유 맛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집이든 대문을 열면 헨젤과 그레텔이 나와 우리를 반겨줄 것 같았다. 독일 마을에서 산책하며 밤새 달려온 피로를 씻을 수 있었다.



남해 독일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다. 6,70년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 중 일부가 고국에 돌아와 정착한 곳이다. 그 사이 1세대 정착민 중 일부는 유명을 달리했고 집주인도 바뀌었다. 현재 독일마을 입주민의 절반은 일반인이다. 독일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물건(勿巾)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뒷산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지형이 물(勿) 자 형상처럼 부드럽고, 좌우 산자락이 수건을 두른 것처럼 포근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물건마을은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집 근처에도 독일마을이 생겼다. 독일마을은 펍(pub)이다. 주인이 직접 수제 소시지를 만들어 판다.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젊은 주인은 주말에 서울을 다니며 2년을 꼬박 배웠다. 그에게 소시지 기술을 전수해준 사부는 독일에서 소시지를 배운 장인(마이스터)이다. 입맛 까다로운 아내는 짜지 않아 맛있다고 했다. 수제 소시지는 유통기한이 짧다. 소량씩 만들어 하루 이틀 사이에 팔아치운다. 저녁시간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도 음악 때문이었다.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즐기는 동안 가끔 주인장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손님들 가운데 그에 화답해 기타를 넘겨받아 노래하기도 한다. 독일마을은 무방부제 구역이다. 우선 소시지에 방부제를 넣지 않는다. 물론 그의 어쿠스틱 한 음악도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다. 흥에 따라 즉석 화답하는 손님들의 음악도 방부제 없이 신선하다. 독일마을이 수수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고졸한 동네에 이런 재미있는 공간이 생겼다.




자신의 동물병원 이름을 따올 정도로 조용필의 골수팬, 자칭 '고독한 수의사'도 어느새 독일마을 죽돌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 대학 밴드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고 일가견이 있다. 요새는 병원일을 마친 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들른다고 한다. 독일마을엔 몇몇 죽돌이가 있다. '볼라레 교수'도 그중 하나다. Gypsy Kings & Gypsy Queens의 'Volare'를 능청스럽게 잘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 자신이 개발했다는 인공지능 우쿨렐레를 꺼내 들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이따금 마주치면 볼라레 음악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짓곤 한다.



20대 초반의 신비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앳된 여학생도 자주 등장한다. 그녀는 가수다.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른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면 한두 곡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다. 계속 이어지는 앙코르를 부끄러운 표정으로 받다 보면 어느새 예닐곱 곡을 부르게 된다. 어느 날인가는 젊은 총각 둘이 등장했다. 한동안 앉아 소시지 안주에 맥주를 홀짝이다가 주인장에게 뭔가 상의하듯 속닥거린다. 곧이어 들고 온 가방에서 간단한 DJ 장비를 주섬주섬 꺼냈다. 작은 펍은 그 날 클럽이 되었다. 독일마을은 소시지와 음악과 술이 버무려져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독일마을의 젊은 주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국내 유일의 식육 마이스터(meister) 임성천으로 부터 소시지 만드는 법을 전수받았다. 30여 년 전 자격심사가 까다롭다는 독일에서 마이스터를 획득한 임성천은 양주가 고향이다. 양주에서 태어난 임꺽정은 백정 신분에 한이 맺혀 산적이 되었고, 임성천은 세상으로 나아가 식육 마이스터가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가공육 유통시장의 왜곡을 줄여보겠다는 그의 뜻은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그를 거쳐간 100여 명의 수제자들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독일마을의 젊은 주인은 이런 스승의 가르침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가공식육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줄이고, 문화적 로컬 커뮤니티를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독일마을엔 오늘도 방부제 없는 음악과 이야깃거리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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