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산다는 것은 1

by 타마코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은 계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안방에는 어린 나와 동생들이 부모님과 살았다. 부모님은 나머지 두 개의 방에 세를 놓으셨다. 대청마루 맞은 편의 건넌방에는 구두를 만드는 아저씨 가족이 살았다. 작은 마당 건너 문간방에는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와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 둘, 이렇게 3남매가 세 들어 있었다. 한여름이면 마당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곤 했다. 더위를 피해 대청마루에서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놀기도 했다. 안방과 문간방 사이에는 마당보다 조금 낮은 부엌이 있었고 그 위는 안방에서 벽장으로 연결된 키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다락방엔 쌀자루나 그 외 곡식 자루를 비롯해 잡다한 세간들이 있었다. 다락방 역시 어린 우리 남매들에게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어릴 적엔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우리 집과 비슷한 형태의 한옥에 살았다. 우리 동네에서 큰길로 조금 나가면 ㅇㅇ맨션이라고 불리는 고층 아파트가 있었는데 부자들이 살았다. 당시에는 아파트에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러워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시내 복판에 있었다. 부잣집 친구들 중 몇몇은 낙원상가 위에 번듯하게 지어진 맨션에 살았다. 놀랍게도 그 주상복합건물에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할만했다. 아파트를 부러워하는 내 투정에 부모님은 “아파트가 뭐가 좋니? 나는 새장 같아서 못 살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집안의 어른들끼리도 이런 대화의 끝에는 맞장구를 치며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소원하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이젠 한국인의 보편적인 주거형태가 된 지 오래다. 편리함과 아늑함 보안에 있어서 편리하다. 또한 서민들에게 아파트는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아파트에 살기 위해서 층간소음쯤은 너그럽게 감수해야 한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맞은편 동의 저녁 풍경을 보며 엉뚱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세로로 줄지어 선 거실들, 그것은 네모난 어항들이다. 각 어항들 속에서 사람들은 붕어빵처럼 살고 있었다. 거실 전등도 같은 자리에 줄지어 달려있고 식탁도 화장실도 안방의 침대도 가구도 비슷한 자리에 줄줄이 늘어섰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어항 속에서 TV 앞에 앉아 동시에 줄지은 환호성을 울리기도 한다.


심한 폭우가 내린 적이 있었다. 100년 빈도의 폭우라고 연일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큰 물난리였다. 끊어졌던 전기는 먼저 들어왔지만, 정수장이 심각한 피해를 당해 근 20여 일 정도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았다. 물과 전기가 끊긴 아파트는 생지옥이 되었다. 자연 취수를 할 수 있는 인근 샘에서 물통으로 식수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아파트 안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밀린 빨랫감과 화장실 변기, 물이 마른 하수구에서 악취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마 세수나 샤워를 못해 부스스한 사람들의 체취도 조금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전기와 수도가 끊긴 아파트는 혈액공급이 멈춰 쓰러진 거인 같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마당이 있는 내 집을 꿈꾸었다. SNS에 이따금 눈에 띄는 멋진 집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곤 했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실행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집을 지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내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이사를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는 스님은 이것을 ‘성조운’이라 말씀하셨다. 성조운이 들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아는 사람이 집을 짓다가 일이 꼬여 마음고생 많이 했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서 마음 한구석 걱정스럽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자잘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자금 문제, 집 짓는 과정, 이사시기 등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분명 감사할 일이다.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연애와 같다. 처음 몇 년간 나는 애인 대하듯 집의 이 곳 저곳을 꾸미고 아끼며 사랑하였다. 작은 마당은 나에게 시원한 바람과 주변 풍경을 주었다. 마당을 지키는 강아지와 놀기도 하고 이따금 데크 위에서 바비큐 파티의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의 물먹은 싱그러움에 감탄하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짧은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을이면 소담스럽게 열린 과실들을 따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수행과도 같다. 때맞춰 강아지에게 밥을 챙겨주어야 하고 산책도 시켜야 한다. 마구 자라는 나무들의 가지들도 잘라주어야 한다. 하절기가 되면 스멀스멀 잡초들이 올라온다. 비가 온 뒤, 며칠 방심할라치면 마당은 전쟁터가 된다. 아직까지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버티는 나는 퇴근 후나 휴일이면 어김없이 마당에서 밀린 숙제를 해야 한다.


“이젠 어떤 집에 사는 것이 좋을까?”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집을 한 번 지어보면 또 한 번 짓게 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다음에 다시 집을 짓는 다면 이렇게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이따금 한다. 집은 세 채 정도 지어봐야 제대로 짓게 된다고 한다. 몰라서 했던 실수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아쉬움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또렷해지는 생각은 지금 보다 나이가 더 많이 들어 늙게 되면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 들면 연애하기 쉽지 않듯이 집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를 잘하려면 이성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 만남을 통해 다양한 이성의 특성도 알게 되고 몰랐던 자신의 성격,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의 생각이 맞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도 곧 알아차려 연애의 기술이 늘어간다.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상형의 집과 연애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우선 메타인지를 발휘하여 자신을 잘 알도록 하자. 간접 경험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집들을 관찰하고 살펴보자. 지금 생활하고 있는 곳이 아파트이던 주택이던 이상형과 연애 중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가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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