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들아
금쪽같은 내 아들아...

다음 생에는 조금 비열하게 살아다오

by 타마코치
간특한 일제국주의여, 열아홉 살 내 눈을 똑바로 보라. 나는 너를 보며 너를 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죽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아서 후손들의 형형한 정신이 될 것이다. 팔다리 묶여 수의를 입고 악랄한 고문에 육신은 찢어졌지만 눈빛만으로 100년 뒤에 도달할 것이다. 다문 입 목구멍에 차오른 말들 눈으로 뿜으며, 대한독립만세 100년을 살 것이다. - 3·1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며 2019년 2월 ‘백흥기 열사의 눈’을 <김주대> 쓰고 그림


아들아 내 아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아

너는 어찌 비열하지 못하여

내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았느냐


우직한 네 얼굴을

누가 비적이라고 손가락질하였느냐

앙다문 두툼한 네 입술을

누가 아나키스트라고 손가락질하였더냐


아들아 아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아

어찌 비열하게 네 몸 하나 지키지 않았느냐

무엇이 너를 그렇게 당당하게 하였더냐


너의 푸른 꿈을

누가 사상범이라고 덧씌웠더냐

너의 뛰는 심장을

누가 빨갱이라고 총 쏘았더냐


몽둥이로 찢기운 우직한 네 얼굴은

100년 지난 지금, 이 아비의 마음을 찢고 있구나


아들아 아들아

금쪽같은 내 아들아

초점 잃은 너의 눈빛은

비루한 이 아비를 꾸짖는구나


다음 생에는

조금 비열하게 살아다오

네 귀한 몸뚱이 하나 버리지 말고

제발 조금만 비열하게 살아다오


아들아 아들아

못난 아비의 가슴을 멍들게 한 내 아들아

초점 잃는 네 눈에

푸른 촛불 하나 밝혀주마

감자바우 같은 우직한 네 얼굴 앞에...



초점 잃은 눈동자. 체념한듯한 표정.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내밀어 앙다문 두툼한 입술. 볼 넓은 코와 선명한 눈썹. 복스럽게 생긴 두상과 귀. 감자 같은 우직한 표정.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19세의 청년이다. 앳된 모습을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본다. 무차별적으로 아무렇게나 맞은 듯한 이 얼굴은 어떤 반성이나 용서도 구하지 않는다. 죽어서야 끝날 매일의 고문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일 태세이다.


금쪽같은 내 아들과 같은 나이. 그의 영정을 보며 시간을 뛰어넘어 나는 잠시 청년의 아비가 된다.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피 토하는 심정으로 아들을 꾸짖는다. '이 불효 막심한 노무 자슥아.. 어찌 그리 우직하고 막혔노. 너 그러다 죽는다. 내가 너를 우찌 키웠는데. 이 나쁜노무자슥아... 좀 비열해도 괜찮다. 누가 뭐라 안 한다. 살아야 할거 아이가..'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을 이 청년의 이름은 백흥기. 1920년 5월 18일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다. 1937년 3월 그는 춘천고등보통중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일제의 차별 교육에 반대해 남궁태, 문세현 등 몇몇 친구들과 항일 학생 비밀 결사체, 상록회(常綠會)를 조직해 항일 운동을 주도했다. 1938년 3월 학교 졸업 후엔 문세현 등 몇몇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만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길림 상록회를 조직한다. 그러나 그해 가을, 춘천 상록회 조직이 발각되면서 만주에서 체포되어 춘천으로 압송된다. 이후 1년간 고문을 받은 끝에 복역하다가 1940년 순국하였다.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 되었다.


<인용>

김주대 님의 글과 그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104470246273052&set=a.393009864085774&type=3&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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