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기

by 타마코치

나무가 쓸만하기 위해서는 나이테가 있어야 한다. 시간 속에서 나무는 키도 굵기도 자란다. 계절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다. 여름에는 쑥쑥 자라서 부드럽고 연한 속살을 찌운다. 가을부터는 느릿느릿 자라 색이 짙고 단단한 조직이 만들어진다.


나이테는 겨울의 흔적이다. 발 묶인 나무에게 겨울은 어김없이 다녀간 자국을 남긴다. 나이테는 나무의 겨울 이야기이다. 열대지방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계절의 변화에 무디게 자란 속살은 뜨거웠던 여름 햇살만기억할 뿐이다.


겨울바람 맞아 자란 나무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겨우내 허리까지 솜이불처럼 덮어주었던 눈 이야기며, 발아래 작은 굴을 파고 웅크려 죽은 듯이 동면했던 작은 동물들의 봄을 기다리는 잠꼬대며, 이따금 무거운 눈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설해목들의 이야기, 밤마다 산골을 울리는 고라니들의 울음소리.. 산을 휘감던 마른 겨울바람과 함께 나무의 몸통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할배를 보며 뭔가 특별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누가 보아도 그는 내세울 것 없는 촌로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깡마른 몸, 세월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나이테 같은 주름이 가득했다. 선명치 않은 눈, 바보 같은 웃음은 초면의 어색함을 녹여버린다. 남루한 작업복 차림으로 손님방에 군불을 정성스레 지피거나 시골집의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8살 때 거제도의 고아원을 탈출했다. 그땐 연결된 다리가 없어서 육지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배를 타야 했다. 몰래 올라탄 꼬마는 어느 할머니에게 애원했다. “할머니 저 좀 숨겨주이소. 제가 꼭 뭍으로 가야 할 일이 있어서예..” 할머니의 한복 치마 속으로 작은 체구를 숨겨 육지로 탈출할 수 있었다.


배고프고 매 맞으며 지내기 힘들어 탈출은 했지만 어린 그에게 세상은 녹녹한 곳이 아니었다. 더욱이 전쟁으로 말라버린 인심은 어린 꼬마의 끼니 동냥에도 인색했다. 굶기를 밥 먹듯 했다. 물 마른 길옆 하수구에 바람 피하며 잠을 자기 일쑤였다. 다시 고아원으로 잡혀가지 않을까 두려움 속에 그렇게 부랑아처럼 살았다.


할배는 글을 깨치지 못했다. 젊어서는 배울 기회가 없었고 나이 들어 작은 사업을 꾸린 후에는 멋쩍어서 배우지 못했던 듯했다. 밑바닥 생활로 배운 할배의 이야기엔 지혜가 넘친다. 그의 얼굴 가득한 주름울 보면서 나이테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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