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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 Mar 10. 2019

블루

파란색의 기억

파란색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스포츠카의 색깔로부터 였다. 어느 해 겨울 대관령 굽은 길을 힘차게 질주하며 지나가던 스포츠카의 코발트블루는 하얀 눈과 멋진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한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옥빛과 오락가락하며 느낌이 변하는 바다의 깊은 청색도, 시리게 푸른 하늘빛도 좋아한다.


최명희 작가의 라디오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혼불'을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수기로 집필 작업을 했다. 몰두해서 작업을 하다 날이 새면 마치 파랗게 물드는 새벽빛이 만년필 잉크를 따라 원고로 전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푸른 기운에 영감을 얻고 취해 대하소설을 쓸 수 있었노라고 했던 그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아마도 저 세상 어딘가 파란 나라에서 다음 소설을 구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인류 역사에서 파란색만큼 부침이 많았던 색도 없다. 로마인들에게 파란색은 미개인들의 색이었다. 파란색 눈은 추한 외모의 상징이었다. 로마인들은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을 혐오하였으며 악마를 파란색으로 그렸다. 여자는 정숙하지 못했으며, 남자는 여자 같은 나약한 인상에 교양이 없거나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심지어 무지개 색깔에서도 파란색을 빼버렸다. 로마는 빨강, 검정, 흰색이 지배했다. 이 3가지 색을 중심으로 모든 체계와 규칙이 만들어졌다.


천대와 무관심 속에 있던 파란색의 운명을 바꾼 것은 성모 마리아였다. 중세 성화에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는 주로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청색은 이러한 비탄과 애도를 상징하는 색 가운데 하나였으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파란색의 인기로 이어졌다. 왕과 귀족들에게 유행하였고 점차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었다. 중세 기사도 문학에서도 색에 대한 상징성을 볼 수 있다. 적기사는 악의 상징으로, 흑기사는 베일에 가려진 주인공으로 그려졌으며 청기사는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인물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산업에서도 드러났다. 청색 염색업자들이 붉은색 염색업자들을 제치고 당시 염색업계의 선두로 부각하였다. 사회의 모든 질서가 파란색 위주로 서서히 재편되었다.


괴테의 베르테르가 살로테를 처음 만날 때와 권총 자살을 할 때 입었던 연미복의 파란색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색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혁명의 색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중립과 합의와 자유를 대변하는 유엔(UN)의 색으로 그 의미가 풍부해졌다. 신교도들에게 금욕과 절제의 의미였던 파란색은 이젠 저항과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를 물들이고 있다. 색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이다.


쪽빛으로 대변되는 파란색은 동양에서도 그 역사가 깊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은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이 등장한 순자의 권학편(勸學篇)이 기원전 3세기인 것을 감안할 때 그 이전부터 쪽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藍)이라는 말은 단순한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藍)색을 함유하는 초목을 총칭한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의 문헌에서는 남(藍)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는 쪽이나 쪽물이라고 불렸다. 쪽은 인도, 이집트를 시작으로 전파되어 중국, 한국,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백제 고이왕 때 복색 착용 제도를 정비하고 신라 때에는 염관에 11인의 염장(染匠)을 두었고 홍전, 능색전, 소방전 등의 염색에 관련된 부서가 있었다. 고려에 와서는 염색을 관장하기 위해 직염국(織染局)에 도염서(都染署)를 두어 전문 장인인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어 염색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경공장에 청염장, 홍염장, 황단장 등 염색을 분업화시켜 염색을 색깔별로 관장하면서 염색 기술이 발달하였다. 쪽염색은 옛날 처녀들이 시집갈 때 쪽물 들인 이불을 해가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고급품이었다. 쪽의 특성상 벌레의 접근을 막는다 하여 미술품을 배접 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 파란색은 자본가들의 색이 되었다. '인디고 블루'는 자유, 젊음의 상징하며 소비를 유도하는 마케팅의 색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빨간색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 등을 상징한다. 반면, 파란색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우파를 상징하는 색이다. 냉전기에는 공산진영과 대립하는 자유진영을 상징하였지만, 미국에서는 좌파나 진보를 의미한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파란색 계통으로 도배된 방에 있으면 시간이 실제보다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20분 앉아 있었는데 10분이 지난 것 같이 느낀다고 하니 공부방을 파란색으로 꾸미면 어떨까 싶다. 또한 파란색은 식욕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다이어트에 활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실제로 사람이 먹는 음식 중에서는 인공 색소를 넣은 음식을 제외하면 파란색 음식은 거의 없다.



<참고문헌>


미셸 파스투로. 2002. <블루, 색의 역사>.  한길아트.


<문화유산 이야기>. 한국문화재단.

https://www.chf.or.kr/c2/sub1.jsp?thisPage=1&searchField=&searchText=&brdType=R&bbIdx=100332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8C%8C%EB%9E%80%EC%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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