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면 떠오르는 것은?
세상에 비가 없다면?이라는 질문에 무어라고 답할 수 있을까?
'메마른 세상이 될 거야'
'지구의 인간들은 멸종할걸'
'비 오빠가 없으면 슬플 거예요'
비가 내린다. 미세먼지를 씻어줄 거라는 기대에 반가움이 앞선다. 비는 지구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오랜 전 화성에서도 비가 내린 흔적이 남아있고, 금성에는 지금도 산성비가 내린다. 금성은 너무 뜨거워 순식간에 증발해버려 지상에서 볼 수는 없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도 비가 내린다. 높은 기압 탓에 액화된 메탄가스 비가 아주 천천히 내린다.
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얼 떠올리는가? 그에 따라 당신의 성향을 조금 읽어볼 수 있겠다.
우선, 가수 비를 먼저 떠올렸다면, 그대는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콘서트장에서 목청 터지게 외쳐댔던 철없고 순수한 열정을 가슴속에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근육질 몸매로 현란한 춤을 출 때면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팬심은 젖는다. 자신의 춤과 노래로 팬들에게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미를 담아 '레이니즘'이라고 매이킹 했다. 사실 레이니즘이라는 단어를 두고 너무 나갔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비가 부르는 노래 '레이니즘'의 뜻이 뭐냐고 포털에 질문이 여러차례 등장했다. “비를 뜻하는 레인(rain)에 주의, 학설을 뜻하는 이즘(ism)을 붙여 비의 영향력, 비만의 춤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이효리의 ‘효리답다’는 효리시(hyorish)와 비슷한 것이다”는 친절한 답변이 올라왔다. 그러자 다른 누리꾼이 “레이니즘은 호우 주의”라고 짤막하게 답변을 남겨 실소를 자아냈다.
비를 보며 화투의 비가 생각났는가? 조금은 팍팍하게 느껴지는 그대의 삶이 로또 한 방으로 해결되는 꿈을 꾸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비는 12월을 가리킨다. 화투 족보 가운데 유일하게 광, 멍, 띠, 피를 모두 갖추었다.
쌍피가 있어 좋을 듯 하지만, 피가 두 개 있는 솔광, 팔광, 삼광 심지어 피가 세 개 있는 똥광에는 발린다. 피를 믿고 고를 외쳤다가 운 나쁘면 멍과 띠 먹고도 고박쓸수도 있다. 그리고 3인용 고스톱에서 비삼광이라 해서 2점밖에 1점이 모자라 못 나는 안습한 상황도 발생한다.
흥미로운 것은 비광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일본 서예가인 '오노 도후'이다. 장맛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노 도후는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연습이 잘 되지 않아 잠시 산책을 나섰다가 개구리가 장마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드나무에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비(碑)를 떠올렸다면 아주 드문 소수에 포함되는 부류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공명심이 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주로 정치인이나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속한다. 비문의 내용에 따라 묘비·탑비·능묘 비·신도비·사적비·유허비·기공비(紀功碑)·송덕비·효자비·열녀비·사비(祠碑) 등으로 분류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개인의 치적을 기록하거나 기념할 일을 기록하는데, 후세에 두고두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거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기도 한다. 요즘으로 치면 웹을 떠도는 디지털 개인정보처럼 잊히지 않는 족쇄 같은 느낌이다.
비를 떠올리며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면 그대는 감상주의자이며 평범한 소시민일 가능성이 높다.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함으로 누리는 부류라 할 수 있다. 주중 내내 뿌옇게 눈과 코를 가렸던 먼지들을 씻어주어서, 이 비로 이제 봉긋하게 올라오는 목련 망울에, 그리고 비가 주는 운치를 일요일 오후의 커피 한 잔과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어 감사해한다. 내일 출근길은 좀 상쾌한 하루가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