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급 발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마코치 Mar 08. 2019

말을 잘하는 방법

스피치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했던 방법들..

출근길, 부천에서 도심을 향하는 버스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좌석버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서서 타고 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종점 부근에서 승차하면 대부분 서울 도심의 회차지점에서 내린다. 자리에 앉으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바로 눈을 감는다. 노약자 등 자리를 내줘야 할 사람과 불편한 시선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승차 지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도심까지는 대략 1시간 10분 에서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젊은 사람들도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나는 그해 겨울 끝자락에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사 취직을 위해 전문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종로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40분쯤 더 가야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한 시간여 남짓 나는 아나운서가 된다. 창밖으로  풍경이 흘러가며 생방송이 시작된다. '나 홀로 출근길'이라는 프로그램명처럼 내가 유일한 출연자다. 창밖의 풍경을 시청자들에게 중얼중얼 스케치했다. 요즘으로 치면 ASMR 방송 같지 않았을까 싶다. 출연자의 말하기 순발력을 키우는 게 프로그램의 기회 의도였다. "아 좀 조용히 합시다" 한 번은 뒷자리 아저씨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소리를 최대한 죽여 남들이 못 듣게 한다고 했는데 잠귀에 거슬렀던 모양이다. 무안하고 미안했던 나는 나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듯한 개미 같은 소리로 목소리를 낮췄다. "아 이 사람이! 거 정말 조용히 좀 합시다!" 또다시 그의 잔소리 후에 멈추긴 했지만 엄청 예민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당시 나는 온 생각을 발표 공포를 이겨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서면 보통은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가끔 급우들 중 누군가를 앞으로 불러내 노래를 시키곤 했다. 어느 날 지명받은 나는 교단에 서서 바지 호주머니 끝단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곤란한 표정으로 버텼다. 선생님은 기다려도 노래가 나올 것 같지 않은 내 표정을 확인한 뒤 "들어가"하며 자리로 돌려보내 주셨다. 그 이후로도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거나 나서는 일은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일로 여겨왔다.


이런 성격은 나 스스로 가장 극복하고 싶은 한계로 생각되었다. 대학 졸업 무렵 우연히 방송 학원의 광고를 보았다. 방송사에서 일하고 싶기도 했고 이런 단점을 개선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학원에서는 방송 스튜디오에서 뉴스나 방송 프로그램을 연습을 했다. 하루는 녹화를 하고 다음번에는 녹화된 것을 선생님이 지적해주는 방식이었다. 카메라를 통해서 비친 우리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보정되지 않은 사진처럼 얼굴의 잡티나 단점을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그래서 메이크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배우나 탤런트들은 정말 선택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시선, 말하면서 드러내는 작은 버릇들도 조심해야 한다. 카메라로 비치는 그 모습은 그 사람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릴 만큼 증폭되어 나타난다.


모니터를 통해서 드러난 각 수강생들의 단점들은 고치도록 지적된다. 짧은 시간에 평생 해온 버릇들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지적의 강도는 자극적이며 때로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깡말라 볼살이 없던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노숙인', '무장공비'같은 표현을 자주 들었다. 나는 학원에서의 실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 집 근처 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며 발성연습을 했다. 청중에 대한 공포를 없애려고 방 한쪽 벽에 온갖 잡지와 인쇄물에서 오려낸 사람들의 크고 작은 얼굴 사진을 가득히 붙여두었다. 그 앞에 서서 그 눈들에 시선을 맞추며 발표하는 연습을 했다.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꿈을 위해 몰입했던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말 잘하는 법, 대중 공포를 극복하는 법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자주 질문받는다.  내가 아는 대로 답을 해주었던 것을 정리해본다.


1. 정확한 발음과 발성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

볼펜을 물고 훈련한다든지, 특별한 발성연습을 한다든지 방법이 도움이 되긴 하겠으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단점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가려줄 수 있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는 게 더 낫다.


2. 조리 있게 말을 하는 것은 훈련으로 개선할 수 있다.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원고가 없어도 누구에게든지 설명을 잘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식견이 되도록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자기가 말할 내용의 대강을 정리할 수 있는 자료 정리 도구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  자녀들에게 말 잘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많이 받는 질문이고 실천된다면 가성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상상력을 발달시킨다. 독서로, 글쓰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물론 발표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실질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공부할 때 공부한 내용을 화이트보드에 써가며 혼자서든 가족 앞에서든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공부해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도 있다. 책을 소리 내어서 읽는 것도 좋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초등학교 교과목에는 '쓰기'와 '읽기'가 있었다. 꾸준하게 음독을 하는 것은 발표력은 물론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평소에 말을 할 때 말꼬리를 흐리는 등 나쁜 버릇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4. 끌림을 주는 스피커가 있다면 그를 모방하라.

스피치도 마찬가지로 누군가 닮고 싶은 모델이 있으면 좋다. 그를 관찰하게 되고 모방하면서 스스로 좋은 기술들을 체득하고 닮아가게 된다. 한 때 여자 앵커의 대명사였던 백모 아나운서를 닮고 싶어 하는 지망생들이 많았다. 장점은 물론 그의 단점까지도 따라 할 정도로 열풍이었다.



1인 방송의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방송을 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의 교육은 '교육부'가 아니라 '유튜부'가 담당하고 있다고 할 만큼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의 교과목에 '방송', '미디어'라는 과목이 포함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제 자신의 손바닥 안의 스마트기기를 통해 방송을 만난다. 더욱 친근하게 공감하는 미디어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미디어 능력은 이제 필수적인 교양이 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빼앗긴 하늘에도 봄은 오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