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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Mar 21. 2019

옷방 적폐 청산한 날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집 정리를 했다. 입지 않는 옷들을 골라냈다. 머뭇거리지 않기 위해 원칙을 먼저 세웠다. 최근 2,3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일 순위로 정했다. 버릴지 말지 고민을 주는 옷은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특별한 의미 때문에 간직하고 있는 옷들, 몇 번 입지 않은 옷들도 포함시켰다.


버릴 옷들을 선별하였다. 옷을 골라낼 때마다 추억이 떠올랐다. 파란 체크무늬 셔츠는 아내가 삼 년 전 생일선물로 사주었다. 촉감 좋은 빨간색 니트는 15년도 넘었다. 스타일도 구식이 되었지만 늘어난 뱃살 때문에 안 입은 지 오래다. 먼지 쌓인 양복들도 끄집어냈다. 옷 정리를 마치기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


정리를 하면서 '적폐'라는 말이 떠올랐다. 적폐는 '쌓여있는 폐단'이라는 의미이다. 입지 않으면서 옷방에 놓여있는 있는 옷들과 통하는 듯하다. 옷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적폐라는 말은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한때는 주인의 몸을 감싸 보호했다. 그림자처럼 바짝 붙어 수행했다. 어느 날부터 주인은 새로운 수행원들과 다닌다. 이따금 수행할 기회를 갖지만 점차 그 회수가 줄어들었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적폐라는 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듣는다. 대개 '청산'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적폐 청산. 느낌이 비슷한 말들을 과거에도 들었다. '사회정화 운동', '정의사회 구현', '새마을 운동' 같은 말이다. 시대에 따라 표현은 달랐지만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예전은 지우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 할 것 같았다.


적폐라는 말은 범위가 넓게 적용된다. 제도와 관행에 관련하며,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안 입는 옷은 그저 옷장에 가만히 놓여있을 뿐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게 적폐이다. 유행을 좇아가지 못하고 옷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옷방은 주기적 적폐 청산대상이다.


적폐라는 말이 등장할 때면 그 배경을 살펴보게 된다. 폐단들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는지 그저 유행에 뒤진 옷을 정리하기 위함인지 말이다. 적극적 개선 의지가 담겨있지 않은 적폐 청산은 언제든 그 적폐라는 화살을 되맞게된다. 적폐도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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