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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급 발견

공간이동 기계와 사과

by 타마코치

처음 보았을 때 쌈빡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작은 체구에서 내지르는 소리에 압도됐다. 천상의 소리 같았다. 워크맨은 소니가 개발한 최초의 공간이동기계였다. 헤드폰을 귀에 걸치는 순간 콘서트장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올리비아 뉴튼존이 노래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숨소리 섞인 노랫소리가 이어진다. '죽인다. 이거 얼마냐?' 35만 원이라는 가격에 놀라는 것도 잠시 뿐이다. 마음은 이미 돈을 뛰어넘는다. 장기라도 팔고 싶었다. 모델명 WM-2. 그렇게 워크맨(Walkman)과 처음 만났다.


최초의 워크맨은 TPS-L2라는 제품이다. 1979년이었다. 내가 만난 것은 2년 뒤에 출시된 개량모델이었다. 소니 창업주는 이부카 마사루다. 음악 애호가인 그는 해외출장이 잣았다. 긴 비행시간 동안 음악을 즐기고 싶었다. 녹음 기능을 뺀 카세트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크고 무거웠다. 공동창업주 모리타 아키오에게 보여주며 '걸어 다니면서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 것이 워크맨의 시작이 되었다.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생각은 새로운 발상이었다. 이후 워크맨은 휴대용 CD플레이어, MP3와 같은 파일형 플레이어 등을 개발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워크맨이라는 브랜드로 3억 8500만 대를 팔았다.


TPS-L2 와 WM-2


오디오라고 하면 스피커를 먼저 떠올린다. 워크맨에는 스피커가 없다. 녹음기에는 빨간색 녹음이 기본이다. 최초의 워크맨은 녹음 버튼도 없다. 카세트 플레이어 상단에 줄지어 세우는 대신 앙증맞은 작동 버튼들이 사선으로 박혀있다. 작은 건전지 두 개로 4시간짜리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다. 헤드폰 잭이 두 개여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 두 개의 헤드폰 잭은 이후 다른 회사의 동종 제품에 표준처럼 적용되었다.


워크맨은 옥스퍼드 사전에도 실렸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뜻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1980년대는 워크맨의 시대였다. 1981년 워크맨의 국내판 격인 삼성'마이마이'가 출시됐다. 내가 소니 워크맨을 만났을 때였다. 워크맨보다 저렴해 친구들도 많이 샀다. 나는 사지 않았다. 살 돈이 없기도 했고 일제를 갖고 싶었다. 음질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니 워크맨을 갖지 못했다. 꿈에 그리던 워크맨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아이와(AIWA) 제품이었다. 오토리버스 기능에 녹음 기능, 튜너, 리모컨 등 모든 기능을 갖추었다. 크기, 음질 흠잡을 데 없었다. 아버지가 해외근로자로 오랜 외국생활을 끝내고 돌아오셨다. 귀국길에 나를 위해 준비하셨다. 이후 등하굣길에서 도서관에서는 물론 어디든 나와 함께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분신이었다. 아이와 카세트 플레이어는 소니의 워크맨과 느낌이 달랐다. 음색도 달랐고 버튼의 작동음도 독특했다. 지금도 구석구석 그 제품의 특성과 사용법을 기억한다.


방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들었던 카세트 테이프를 발견했다. 고음질용 크롬 테이프였다. 허니 드립퍼스의 시오프러브라는 손글씨가 적혀있었다. 고장난 아이와 워크맨과 어학공부용으로 쓰던 소니의 찍찍이 카세트 녹음기는 책꽂이 상단 한켠에 놓여있다. 이제 쓸 일은 없다. 가끔 만져보며 기억에 남아있는 소리들을 떠올려볼 뿐이다. CD플레이어 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음악 소스는 애플 뮤직이 대신하고 있다. 불과 40년 사이에 소니의 공간이동기계는 우리를 사과밭으로 데려다주었다. 어디서든 연결하면 음악이 흐르는 스트리밍의 세계로.




Walkman anniver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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