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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급 발견

모발~모발~

by 타마코치

머리 숯이 줄어들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대머리로 귀결되는 유전형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뚜렷한 원인도 모른다. 어릴적 빽빽했던 머리숱이 군 제대 후 정수리를 중심으로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취직을 했다. 탈모를 그냥 둘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서울에서 용하다는 전문의를 찾아갔다. 서른도 채 안된 나이에 좀 머쓱했다. 뜻밖에도 진료실 앞에는 여성환자들이 더 많았다.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선글라스 여인이 앉아 있었다. 맞은 편 의자엔 아주머니가 멍한 표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깡마르고 어두운 얼굴은 퀭한 눈을 품고 있었다. 짧은 솜털이 성기게 난 민둥한 머리였다. 체념한듯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동전만한 크기로 여기저기 듬성듬성 맨살이 드러난 아저씨도 있었다. 개중엔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환자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깎았다. 긴머리에 가려져서 잊고 살았던 머리의 상처가 드러난다. 두피의 상처 부위는 더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모양대로 상처를 간직한채 맨살을 드러낸다. 우리들은 그걸 '땜통'이라고 불렀다. '걔 있잖아? 왜 거 뒤통수에 땜통있는 새끼...' 친구들 사이엔 땜통으로 불리는 애들이 몇 있었다. 비아냥인듯 아닌듯 그냥 그렇게 불렀다. 땜통의 크기와 개수에 따라 과거에 대한 암묵적 추리를 했다. 땜통이 머리통 여기저기에 있었다면 그렇게 가볍게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동전만하게 땜통이 생기는 경우는 보통 급성탈모증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만성탈모증이다. 뚜렷한 원인도 치료법도 없이 증상완화를 기대하며 지속적인 대응 치료를 해야한다.


탈모는 약물로 치료한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한다. 눈에 띠게 개선되지는 않는다. 탈모약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와 관련이 크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임상실험하다가 탈모가 개선되는 부작용을 발견했다. 비아그라가 협심증 치료약물의 부작용으로 탄생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약물치료가 탈모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 모발이식이나 가발을 선택한다.


모발이식은 주로 환자의 가슴털이나 턱수염을 활용한다. 머리털을 제외하면 길이가 제일 길기 때문이다. 모발이식을 한다고 머리숱이 정상인 처럼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성긴 머리숱을 가진 정도로 회복된다. 비용에 비해 효과가 크진 않다. 마지막 대안은 가발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다양한 가발들이 많다.


탈모치료는 돈이 되는 비즈니스다. 한국 미용회보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국내 탈모인구는 천만명이 넘는다. 시장 규모는 4조원에 이른다. 해마다 탈모환자 25만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미용에 관심이 많아지고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원인이 크지만 매년 늘고 있는 이십대 탈모인구도 한 몫을 한다.


대학에 다닐때 외사촌 형 집에 놀러 갔었다. 형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졸업하고 광주에서 친구 몇 명과 의기투합해 학원을 차렸다. 학원 홍보물 사진 속에 형을 소개하는 증명사진이 박혀있었다. 프로필이 화려했다. 이름옆의 숫자도 제나이가 아니었다. 프로필 사진과 경력은 관록있는 중견 수학전문가였다. ‘와~ 경력이 너무 구라가 심한 거 아니야? 선생이 이래서 되겠어 이거!’ 사실 홍보물로만 봐서는 적혀있는 나이와 경력이 사실처럼 보였다. 형은 대머리였다. 대머리의 위력은 대단했다. 갓 서른이된 형을 경험 많은 중년으로 만들어 주었다.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탈모 당사자는 삶이 우울해진다. 사촌 형처럼 악용을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극히 일부다. 가발녀와 달리 나는 가발남을 잘 구별한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해도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음이 짠하다. 생각보다 가발남이 주변에 많다.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 스트레스로 머리숱이 희생당한다.


탈모인들이여 힘을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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