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급 발견

만년필과 악필

by 타마코치

나는 악필이다. 예쁘진 않아도 정갈한 글씨를 보면 부럽다. 글씨를 잘 쓰고 싶어 노력했던 적도 있다. 펜글씨를 쓰면 글씨체가 좋아진다고 해서 펜촉으로 병 잉크를 찍어가며 일기를 써보기도 했다. 서걱거리는 펜촉의 느낌은 좋았지만 글씨체는 나아지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도 펜이 주는 필기감을 좋아했던 녀석들이 제법 있었다. 당시엔 중학교 입학 선물로 만년필을 받는 것이 유행이었기도 했다. 나도 파커 45 만년필을 부모님께 선물 받았다. 남색 플라스틱 몸체에 금속 캡이 반쯤 덮고 있었고 금도금된 화살표 장식이 달려있었다. 파커 21은 그보다 저렴한 모델이었다. 파커 45는 잉크의 흐름, 필기감이 좋아서 인기가 있었다. 그 외에도 국산 빠이롯트 만년필도 많이 사용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크로스 타운센트 모델이었다. 당시에 20만 원이 조금 안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타운센트는 크로스 만년필의 대표적인 모델로 요즘도 다양한 상품군을 생산하고 있다. 묵직한 느낌의 바디와 필기감을 느끼며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가는 펜촉으로 바꾼 것을 제외하고 24년째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난 여전히 악필이다.


악필 주인을 만나 고급 만년필이 고생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만년필을 좋아한다. 크로스 만년필 외에도 저가의 만년필을 몇 자루 더 갖고 있다. 대형서점이나 면세점 문구코너에 가게 되면 만년필 판매대 앞을 기웃거린다. 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고 욕심이 나는 만년필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매번 침을 흘리게 하는 만년필이 있다. 잘 빠진 검은색 세단 같은 녀석은 바로 몽블랑이다. 끝부분에 눈 쌓인 몽블랑 산을 형상화한 장식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몽블랑 볼펜을 한 자루 쓰고 있다. 몇 년 전 아내가 친구들과 해외여행 길에 선물로 사주었다. 가격이 만년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볼펜도 비싸다. 만년필 못지않은 필기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난 여전히 악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발~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