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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급 발견

귀가하지 않은 아들

by 타마코치

지난밤에 큰 아들이 귀가하지 않았다. 그는 강릉 비행장에서 근무하는 군인이다. 지난 금요일 휴가 나와 하루 자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가면 이따금 수원 본가에 머물면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내려와 남은 휴가를 보내다가 귀대했다.


큰 아들이 요즘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은 입대 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한두 살 터울의 또래들이다. 남녀 포함해 4,5명 정도 모여 어울렸다. 주로 뭐하고 노는지 물어보면 홍대나 신촌 부근에서 만나 PC방이나 노래방에 가고 어둑해지면 술 마시며 수다 떤다고 했다.


아내는 아들과 자주 통화한다. 휴가 나오기 전 아들과 통화하면서 특별한 일정 하나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 댁에서 이틀 자고 삼일 째 되는 날은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아내는 좀 더 자세히 물었다. 무리 중에 여자 사람 친구 부모가 여행을 떠나 집이 빈 사이 친구들을 초대했고 4,5명의 멤버들이 모여서 같이 놀기로 한 모양이었다. 지난밤이 바로 그 날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하지 말고 늦게라도 할머니 댁으로 가서 자거나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아들은 이미 약속을 했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네 자식이 지금 너와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면 허락해주겠냐고 묻는 애엄마에게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자기 상황은 좀 다르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장광설을 풀어놓는다. 휴가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며칠 더 생각해보라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별다른 이야기는 없어서 계획을 바꿨으려니 생각했고 아들은 휴가 나와 사복으로 갈아입고 서울로 올라갔다.


어제 어머니랑 통화하면서 아들이 저녁에 집에 도착할 거라고 하셨다. 낮에 친구들 만나 놀다가 집으로 바로 간다며 짐을 싸들고 나갔다고 했다. 아내는 아들과 통화했다. 물어보니 친구들과 PC방에서 밤새워 게임을 하기로 했고 다음 날 아침에 헤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그 말이 곧이 들리질 않았다. 아들은 친구들과 원래 계획대로 약속을 결행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우리에게 앞뒤가 맞지 않는 어수룩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애엄마는 중고생도 아니고 늦게라도 차표를 끊어 타고 오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만큼은 아니지만 아들들을 엄하게 훈육했다. 돌이켜보면 어리숙한 초보 아비 노릇이어서 큰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남겼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 생활지도나 대화의 통로는 주로 아내가 하도록 했고 나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나서야 할 상황에만 개입해왔다. 사실 그럴 일은 많지 않아서 평상시엔 소소한 이야기들과 일상을 함께 하며 잘 지냈다.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로 떠나면서 그 시간도 이젠 귀하게 느껴진다.


기숙사에서 최소한의 생활지도를 한다고 하지만 사생활이 존중되면서 예전만큼 엄격하지는 못하다. 아이들을 집에서 내놓으면 부모들은 늘 걱정이 앞선다. 잘 지내고 있는지 뭘 먹고 요즘은 누구와 어울리는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들에게 직접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밤늦게라도 돌아오라는 톡을 남겼다. 톡도 읽지 않았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내놓으면 내 자식이 아니려니 하고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게 맞나 보다.


'너 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라' 속 썩이는 자식에게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다. 아들의 행동을 보며 내가 처음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타협안을 받아들이거나 사실과 다르게 둘러댔던 것 같다. 그런 과정이 번거롭고 귀찮아 아예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큰 아들은 아침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 또한 걱정스러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거나 하지 않았다. 철이 덜 들긴 했으나 그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회적 행위가 아닌 이상 아들의 사생활에 적극적 개입은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다. 아들은 시행착오나 경험을 통해 배워가야 할 자신의 분량이 있을 테니까. 다만, 퇴근해서 아들을 마주하면 어떻게 대해야 할는지 마음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어린 아들을 키워 본 경험은 있지만, 성인이 된 아들과 관계하는 데는 여전히 초보 아비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의 생각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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