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살지만 설악산 대청봉을 딱 한 번 가봤다. 군 복무 중 상병 휴가 때였다. 강릉이 본가인 동기의 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점심 무렵 같이 길을 나섰다. 대청봉은 오색으로 오르는 길이 제일 빠르다. 단풍철이 막 끝난 산길은 무수히 다녀간 행락객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져 있었다. 체력이 한창이라고는 하지만 등산을 자주 하지는 않아 가파른 길이 쉽지 않았다.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혈기는 산행의 요령 따위는 아랑곳없이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두 시간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오르다가 바위에 앉아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마른 체구의 사내가 유유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었다. 빗질하지 않은 머리와 콧수염의 사내는 집 뒷산을 산책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빛바랜 군용 스키 파커를 입고 있었으며, 낡고 헤져 군데군데 실밥이 터진 국방색 군용 배낭을 메고 있었다. 신고 있는 신발도 낡은 워커여서 그가 군과 오랜 인연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저 사람 포스 있다. 별로 힘들어하지도 않고 산책하는 것 같네.
그러게 말이야. 특수부대 출신인가 봐.
우리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길 옆 나무 둥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아저씨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우리를 지나쳐 올라갔다. 그렇게 또 한참을 오르다가 앉아 쉬고 있는 아저씨와 마주쳤다.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아 숨을 고르는 우리에게 그가 물었다.
학생들인가요?
아니오. 군 복무 중입니다.
그런데 다른 데 놀러 가지 않고 왜 산을 타고 있어요? 고생스럽게...
아저씨는 산을 아주 잘 타시던데.. 무슨 일 하시나요?
.....
고생한 기억이 많아서 설악산은 다시는 안 오려고 했는데...
빙긋이 웃으면서 중얼거리듯 내놓은 그의 대답은 우리를 더욱 궁금하게 했다. 어디에서 근무하냐는 남자의 질문에 우리는 모 부대에 근무하며, 입대 동기라는 둥.. 대청봉에서 오늘 묵을 거라는 둥..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르면서 아저씨는 자신의 이력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특수부대에서 하사관으로 7년을 근무했다. 운이 좋아 일찍 제대했다. 자신의 동기들은 더 늦게 제대하거나 아예 말뚝 박고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다. 주로 설악산 일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한겨울에 헬기로부터 어느 계곡에 낙하되어 부대로 정해진 날짜에 귀환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귀환 훈련 중에는 식량 배급 없이 산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생존훈련도 포함됐다.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는 설악산의 산과 계곡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아 있다. 선임들의 등살에 내무생활도 힘들었다. 하루빨리 제대하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말도 못 했다.
그는 그렇게 7년을 복무하다가 제대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우리나라를 떠났다. 그 기억들을 지우고 싶어 유럽 일대를 방랑자처럼 여행하였다. 그러다 독일에 정착했다. 복무 중 모은 돈을 마냥 쓰면서 지낼 수 없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상세히 듣지 못했지만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한국에는 누나가 살고 있었다. 누나와는 가끔 편지나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 이후로 10년 넘게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잠시 귀국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한두 달쯤 있다가 다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진절머리가 나는 기억들이 떠오를 것 같아 설악산이 있는 강원도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누나는 그가 제대하면서 놓고 간 짐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먼지 쌓인 배낭과 짐들을 정리하다가 귀소본능에 이끌리 듯 설악산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대청 산장에 도착하였다. 산장의 침대는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있는 그것과 비슷했다. 우리는 다층 구조로 지어진 키 작은 3, 4층의 침대 중간 쯤 잠자리를 배정받았다. 보통은 미리 예약을 했지만 해가 진 이후에도 예약하지 않은 등산객들이 계속 들어왔다. 산장은 대피소이기도 했기 때문에 수용인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조건 없이 받아주었다. 심지어 10시가 넘어 어둑한 산길을 뚫고 산장에 도착한 패들도 있었다. 산장 밖은 안과는 달리 추운 겨울이었다.
그 밤 우리는 소곤거리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벌써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코를 고니까 고참들한테 혼나지..'라며 우리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전날 힘든 산행으로 자면서 코를 엄청 골았던 모양이다. 겸연쩍게 웃는 우리에게 남은 군대생활 열심히 하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그는 먼저 산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