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좀 피곤하지만 운전을 좋아한다. 동승자 없는 장거리 운전길은 나만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동차를 몰 때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신감을 느낀다. 자동차는 '사색의 기계'라는 말에 동의한다. 운전을 하는 동안 자기 문제에 몰두할 수 있고 아늑한 고치 같은 공간에 들어앉아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실내 공간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 작은 실내공간은 안락(cosy)해서 운전자와 동승자는 친밀감을 느낀다. 외부와 차단되어 세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게 해 주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방으로 낸 창은 전망 좋은 응접실이 되며 대화의 공간이 된다. 때로는 여정길의 피곤함을 달래주는 캡슐호텔이 되기도 한다.
운전을 할 때, 안전을 위한 제 일 계명은 전방 주시다. 자동차 사고는 전방주시 태만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사고방지를 위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기에 운전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족쇄다. 안전한 운행에 대한 부담은 운전자뿐만 아니라 동승자들도 일정 부분 나누어 진다. 동승자와 대화, 내장 기기 조작, 떨어진 물건 줍기, 휴대폰 만지기 등 전방주시를 방해하는 원인들은 많다. 운전만 아니라면 특별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들이다.
기술 발달에 따라 한결 수월해졌지만 운전석을 지키고 앉아 전방주시를 해야 하는 운전의 기본적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 IT기술이 자동차에 접목되면서 운전의 족쇄에서 해방될 날을 꿈꾸게 하고 있다. 운전석에 앉아 자동차를 운전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면 손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깔깔거릴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 시대가 되면 운전은 범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자동차 실내공간도 진화한다. 전방주시 계명을 위반하면서 모험을 감행했던 딴짓들은 더 이상 죄가 되지 않으며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된다. 자동차의 실내공간은 이동형 사무실이 될 것이고 움직이는 침실이 될 수도 있다.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노래방이나 회의실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다양한 옵션이 가능한 복합 공간이며 더욱 개인화된 공간으로 진화하게 된다. 기술적 제도적 고민들이 완벽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운전의 족쇄에서 해방된 공간을 생각해보면 가슴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