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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Apr 03. 2019

타마의 행복여행

나의 행복한 순간

요즘 부쩍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살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꾸뻬 씨의 행복여행>에서 이야기 한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하는 사람들'에 몸을 반쯤 걸치고 있었다. 옷은 잘 차려입었지만 허기진 사람들이다.


그 허기를 처음으로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부터였다. 밥을 많이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고 술을 마시면 잠시 잊힐 뿐이었다. 이런 공허감을 누군가로부터도 공감받지 못했다. 어느 책에선가 거의 근사하게 표현되었던 것을 마주하고 기뻐했던 적이 있었다. 염세주의자로 합리화했지만 나는 현실 도피자일 것이다. 현실에 살지만 철없는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수동적이었고 드러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드러내고 싶지만 두려움을 넘을 용기가 부족했다.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하여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 문턱을 드나들었던 것과는 달리 진지한 탐구를 작정했다. 그러나 수년 동안 했던 적극적 교회 활동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회칠한 무덤처럼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허기진 영혼으로 되돌아왔고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 해결하지 못한 개인사로 스트레스가 많던 날 내 발길은 어느 사찰로 향했다. 백일 간 명상강의를 한다는 안내문을 따라 홀리 듯 이끌려갔다. 혹시 그곳에 가면 주린 속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 사찰엔 중년에 접어든 스님이 한 분 계셨다. 신도도 별로 없어서 편안했다. 동절기가 시작될 무렵이어서 백일 동안 법당에 앉아 공부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다. 열 명이 같이 시작을 했는데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오십일 쯤 지나면서 남은 건 나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명상의 세계에 빠졌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행복감은 마취제와 같았다. 현실감각이 무뎌지고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시간을 내면 탐구에 쏟아붓고 싶었다.


행복은 몰입에서 나온다. 몰입은 장난감과 같다. 현실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최초의 몰입은 아마도 엄마로부터 나오는 소리와 표정이었을 것이다. 몰입의 대상은 먹을 것과 장난감으로 옮겨가고 점차 성취감으로 옮겨간다. 몰입은 선형적 시간 위에 놓인 우리를 카이로스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언뜻언뜻 보이지 않는 세계의 정수를 경험한다.


명상이 그렇다. 몰입감을 주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내면 여행을 통해 만나는 세계는 맛보지 못한 피안을 기대하게 한다. 우리는 몰입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한 현실은 몰입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건지, 행위를 통해 몰입하게 되는 건지 불분명하다.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밥을 먹으면서, 길을 걸으면서, 심지어 사랑할 때도 현실은 뇌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요즘 몰입하고 있는 장난감은 '스몰스텝'이다. '스스로 몰입하기 위한 스텝'이라고 의미를 부여해본다. 행복은 몰입했던 순간들의 총합이다. 스스로 정해놓은 몰입 거리들을 정해두고 매일 실행에 옮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는 피로를 덜어주어 몸을 행복하게 해 준다. 읽고, 쓰기는 마치 천적과 함께 어항 속에서 생활하는 물고기가 느낄 듯한 깨어있음을 준다. 글감 고민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주절주절 쓴 글들이 블로그에 쌓여가는 것을 보며 스스로 행복감을 느낀다. 필사는 나의 행복감을 더욱 크게 한다. 필사하는 동안 지속되는 몰입은 새로운 생각의 고리로 연결해준다. 그 고리를 따라 이제껏 가보지 않은 길을 만난다.


꾸뻬 씨가 행복 여정에서 얻은 교훈 것처럼 사실 진리는 단순하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우리가 복잡할 뿐이다. 행복에 대한 진리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 속에 담겨있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답은 심플 라이프야'라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복잡한 이론들이 펼쳐진다. 심플하기에는 현실에 놓인 마음이 심플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에서 처음 며칠 묵었던 때가 떠오른다. 엄격한 규율을 생각했던 나는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절 생활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예상과 달리 규칙은 없었다. 혼자 계신 탓인지 아침 공양시간도 스님이 밥 먹는 시간에 먹거나 스스로 알아서 챙겨 먹으면 됐다. 아침 예불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새벽 시간에 눈이 떠지는 대로 시작하셨다. 아주 가끔 늦게 기상하는 날은 거르기도 하셨다. 스님의 일과는 자연스러운 리듬에 따랐다. 마음 가는 대로 자기 일 하면서 지내는 게 규칙 아닌 규칙이었다.


행복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작은 몰입감을 느꼈다. 오늘 만난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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