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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Mar 24. 2022

다국적 항공사의 밥맛

외항사 승무원의 밥 짓는 법

 아흐마드는 이십 대 후반의 무슬림이었다. 나와 다른 동기들과 밥 지어먹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밥꾼이었다. 같은 아시아 태생이라 그런지 나와 아사미는 다른 동기들보다 더 자주 그와 쌀밥을 나누었다. 전에 일하던 항공사에서는 밥솥이나 기타 간단한 취사용품을 각자 꾸려와서 취항지에서도 밥을 지어먹었다던 그는 요리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친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새로 장만한 웍에 건새우를 넣은 말레이시아식 볶음밥을 만들고  볶음밥 가운데를 동그랗게 밀어낸 자리에 치익 계란 프라이를 했다. 새로운 스킬이라며 스스로 뿌듯해하는 그는 동기들 사이에서 당시 인기 있던 제이미 올리버였다. 나시고랭을 만들고 직접 만든 연유를 끼얹은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만들었다. 코코넛 향이 고소하고 달콤하게 유혹했고 나는 인생 최초 달콤한 밥을 먹고 충격을 받았다. 처음 한국에 온 유럽 승무원에게 팥빙수를 소개했을 때 콩이 디저트냐고 기겁했는데 나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두바이엔 토속 음식이라기보단 예전부터 현지인들과 섞여 살거나 인접 국가인 민족인 인도, 이집트, 파키스탄, 이란 등의 지역음식들이 많았다. 그중에 쿠사리라는 이름의 (이름 때문에 핀잔주지 마세요!!)이집트 요리엔 국수가 섞여 있었다. 처음 먹을 때 뭐지 국수 요리한 게 섞였나 싶어 뒤적였었다. 다왈리 라는 아랍 가정식 요리도 쌀로 만든 것인데 아랍 전통식에서 일등석 전채요리 중 하나로 나오는 이것은 새콤한 포도잎에 쌀을 넣고 찐 것이다. 그리스와 인도에선 밥에 요거트를 부어 먹는다.  아랍에미레이트에 살며 맛본 다양한 밥들이 처음에 낯설었지만 맛탐구가인 내겐 이내 즐겨먹는 음식들이 되었다. 나고 자라며 먹는 것부터 달랐던 우리가 한솥밥(기내식)을 먹으며 하나의 목적지을 향해 살아가는 동안 이기고 져야하는 것들이 있었다. 문화 충격을 마주쳤을 때 처음엔 반드시 내가 이기고 당신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우리가 이기고 내가 지는 것이 재밌는 방법인 것을 찾았다. 나는 다른 밥을 먹고 먹이는 동안 이게 뭐야라고 탓하거나 비꼬지 않고 이게 뭐야 라며 긍정적이고 진심 어린 호기심과 반응을 배워나갔다. 이틀에 한번 꼴로 새로운 문화의 낯선 사람을 만나며 내 수첩엔 그날의 낯선 밥맛이 빼곡히 적혀갔다. 동료들과 승객들과 함께 먹어본 밥은 내가 먹어온 것에 비교하면 달고 짜고 시지만 한결같이 각자의 본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한채 고유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독특함과 유일성을 존중하면서 내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을 연습했다. 내가 일하던 다국적 승무원이 일하고 전 세계인이 허브 삼은 두바이에 위치한 E항공사는  비빔밥 같았다. 모든 재료가 한데 섞이지만 애초엔 따로 준비된 재료들이 각자의 맛을 잃지 않고 느껴지는 것. 나도 그 속에서 내 맛을 잃지 않고 섞이는데 집중하며 살아내려 애썼다. 9년이 지난 어느 날 그렇게 나는 경계인이자 중간 사람이라는 새로 지은 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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