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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Mar 24. 2022

하우스메이트의 연애

컬쳐쇼크의 시작

 두바이 생활의 첫 관문은 낯선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고 스무 살에 어학연수 갔을 때도 일 년 남짓 기숙사 생활로 가족 외의 사람과 부대껴본 경험이 없지 않아 있었다. 칼 단발의 입술산이 뾰족하고 손톱이 잘 다듬어진 날씬한 여자, 리모와 수트케이스에 여행용 크기의 루이뷔통 보스턴백을 올리고 서 있던 아사미는 목소리가 쨍쨍하게 힘있게 울리는 위트있는 일본 여자였다. 아사미는 내 첫 룸메이트이자 이후 수년간을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유머감각이 잘 맞는거 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속옷부터 핸드크림까지 명품을 쓰고 소독과 정리정돈의 천재 같은 그녀와 냄비란 냄비는 다 태워먹고 물건을 바닥에 두던 나와는 생활습관도 사고방식도 달랐다.


 첫날 저녁을 지어먹으며 나눈 대화는 서로의 연애관이었다. 남녀 간의 연애는 20대 최고의 화두지만 당시의 나는 남녀 간의 사랑에 염세적이었고 이렇다하게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아사미가 남자 친구가 있다기에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사미는 자기 남자 친구가 유부남이라고, 마치 성이 김씨야 라고 말하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두바이의 첫 문화 충격은 그렇게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했다. 만난 지 몇 시간 안된 초면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건 아니지 않냐고 반격하고 말았다. 발끈하면서도 괜히 아사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사미 눈치를 살폈다. 아사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마에서 파를 다다다 다 멈추곤 우린 사랑해 그거면 됐어.라고 했다. 아사미는 자기가 일본의 J항공 지상직 직원이었으며 남자 친구는 J항공 기장이어서 만나게 됐다며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숨을 고르며 애틋해했다.


 아사미와 룸메이트로 같이 산 시간은 석 달 내외였던 것 같다. 그 사이에 그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두바이에 놀러 왔었다.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내가 비행 간 사이에 도착했었고 벽 너머로 아사미와 대화하는 소리를 얼핏 듣고는 나는 괜히 마음이 심란하고 괴로워져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크게 들었다. 남자 친구가 돌아가고 아사미는 꼼꼼한 성격에 공부중이던 교육용 매뉴얼을 다시 만들다시피 폐인처럼 공부하면서도 남자 친구 사진을 휴대폰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느라 낑낑대다가 나한테 부탁했었다. 그때 처음 그 남자 친구 사진을 봤는데 왜 이런 명석하고 예쁜 여자가 왜 이런 금지된 사랑을 할까 하고 외모적인 특징을 자세히 살펴봤다. 난 사진에서 어떤 특징도 발견하지 못했다.아사미는 같이 찍은 사진도 없이 내가 휴대폰으로 옮겨준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혼자 선 남자 친구 사진을 그렇게 아껴봤다.


 그러다 어느 날 아사미가 오사카 비행에서 돌아오던 날이었다.


 본인의 나라에 승무원이 되어 첫 비행을 갔었기에 얼마나 설레고 즐거웠을지 알기에 나는 축하해주려고 외출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복도에서 엘리베이터가 가까운 우리 방이어서 띵 하는 소리와 슈트케이스 끄는 소리, 구두 소리에 아사미인걸 알았다. 장난치려고 문 앞에 바짝 다가서서 아사미가 열쇠 꾸러미를 찰랑거리며 찾아드는 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쩐지 문 앞에 인기척은 있는데 문을 열지 않고 서 있었다. 문을 사이에 두고 그녀가 숨을 고르는것을  느꼈다. 내가 급하게 문을 열자 고개를 든 채 울고 있던 아사미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힘없이 안겼다. 폭이 좁고 얄팍한 상체가 품에 쏙 들어왔다. 평소에 힘 있게 노래하던 명랑한 사람이 숨죽여서 우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축하하는 마음을 같이 갖었다. 아사미는 그대로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허리를 곧게 펴고 내가 따라준 뜨거운 유자차를 양손으로 잡고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어떻게 된거냐고 묻자.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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