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컬러의 본질
엄마를 떠올리면 까만 눈동자가 생각난다. 선명하고 맑은 흑요석 같은 눈동자. 엄마는 염색한 갈색모보다 검은 머리카락이 잘 어울렸다. 나는 아빠를 닮아 눈동자 색도 밝고 흑발은 칙칙해 보이는 편인데 엄마는 검은색이 엄마를 더 환하게 밝혀주는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면 팥죽 색도 떠오른다. 엄마와 나는 립스틱을 사러 같이 가면 각자에게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내면 서로 추천하면서 발라보곤 했다. 엄마에겐 보랏빛이 도는 핑크색 립스틱이 잘 어울렸다. 내가 바르면 "아, 당장 수액 맞으러 가야 할 것 같아 보이는데." 하고 씁쓸해지던 색이 엄마에겐 찰떡같았다. 실제로도 팥죽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엄마, 엄마가 팥죽 좋아하는데 그 팥죽색이 참 잘 받아. 입에 묻어도 이쁘네" 엄마는 "그냐, " 하고 웃으시더니 "그래서 너는 김치찌개를 좋아했나 보다."하고 농담이지만 정확한 진단을 해서 웃었다. (나는 윤광이 약간 있는 주황빛이 잘 받는다.)
그래서 나는 길을 지나다가 보기 드물지만 검은 트렌치코트를 발견하면 아, 엄마 거다. 하고 돌아본다. 예전엔 지체 없이 가게로 들어가서 사다 주곤 했는데 내 식솔이 생기고나니 살까 말까 고민만 하다 가게에 들어가 볼 엄두도 못 내보고 지나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나무도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데 60번 하고도 몇 번 더 많은 사계절을 지나는 우리 엄마는 계절을 지날수록 자기 색깔이 돋보이는 옷차림 대신 한 겹 한 겹 옷을 벗어내는 것만 같다. 거의 맨살이 다 되어 무슨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인 것 같은 그런 때가 되면 헤어질 시간이 되려나 싶게, 자신을 남들 사이에서 돋보이기보단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우아하게도 느껴진다. 그게 딸인 내 마음을 아프게도, 진심으로 고맙기도 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가 한창 빠져있는, 퍼스널 컬러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내 것이 아닌 것은 내려놓지만 내 것을 지켜내는 신념과 자신감으로 덧입혀진 인간의 내면 모습. 대중탕에서 등만 보고도 알아지던 낯익은 우리 엄마 맨살이 그립다. 퍼스널 컬러의 진단의 기본이 가장 본질로 돌아가는 그런 여정이 되길 엄마의 눈동자를 생각하며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