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동료와 사랑에 빠질 확률
다른 외항사는 잘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항공사는 높은 비율로 남자 승무원이 많았다. 승무원만 스물여섯명이 한꺼번에 타는 비행기 기종의 경우 열명 정도가 남자 승무원인 경우도 있으니 국내 항공사에 비하면 여초회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남자 승무원이 많다. 승무원끼리의 연애와 결혼도 흔한 근무환경은 이렇게 남자승무원이 많은 비율이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남자승무원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오늘 이야기할 사건에서 비롯된다. '하필'의 '하필'이 이뤄낸 결과이다.
신입 승무원으로서 받아야 할 교육과정은 약 한달여 정도다. 그 때 세계 각국에서 온 동료들과 한 반을 이뤄서 아침부터 오후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붙어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른다.
그 중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은 '안전교육'이다. 실물 크기의 비행기 모형에서 실제 안전 사고를 대비한 실전교육을 한다. 기내에 불이 났을 때, 이륙 중 회항, 엔진에 불이 났을 때 등등 수십가지의 사례를 실제로 대하며 드릴, 즉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과 머리에 익히는 연습을 한다. 아무리 교육이라지만 실제 크기의 비행기이고 비행기의 'ㅂ' 정도를 배운 새내기일 때 이 교육은 긴장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유니폼 대신 훈련 중 입어야 하는 하얀색 작업복 모양의 오버롤을 입고 승무원과 승객을 번갈아 하며 각자의 역할을 실제처럼 연기해야 했다. 조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예보해주는 대신 우리에게 승무원1,2,3,4 번호 또는 승객의 역할을 적은 큐카드를 받았다. 예를 들어서 실제 식사를 서비스 하는 중에 짐칸에 불이 났다는 안전사고의 경우에는 승객1의 큐카드에는 기침하며 콜벨을 누른다, 옆의 승객이 괜찮은지 살피다가 소리를 지른다, 등이 있다. 승무원의 역할을 할 때는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도 승객 역할을 맡을 땐 혼신의 연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긴장하는 승무원 역할의 동료를 보며 짠한 마음과 함께 내가 저랬구나, 하고 거울모드로 배우기도 한다. 훌륭하게 배운대로 안전사고를 처리하는 동료들도 많았고 이미 다른 항공사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경력직의 동료들은 긴장하지도 않고 훈련을 해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버벅대며 잘못된 출구로 탈출하기도 하고 승객의 구명조끼를 반대로 입히기도 하는 둥 조교에게 가르치는 맛이 있게끔 우리 반의 커다란 구멍 중 하나었다.
숨가쁘게 승무원 역할을 마치고 난 뒤엔 쓰디쓴 피드백을 받았다. 드디어 나도 승객 역할을 할 차례였다. 내 역할은 신혼여행 중인 부부 중 여자 역할로 좌석은 승무원의 맞은편인 비상구쪽 창가였다. 훈련을 시키는 조교는 내게 몇 년이나 세탁하지 않은 아기 인형을 안기며 큐카드를 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나 역시 웃어보였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승객역할이라도 잘해라'라는 뜻의 미소였던것 같다. 큐카드를 보니 울며 보채는 아기를 달래는 연기, 아기에게 줄 분유를 타기 위해 따뜻한 물을 달라는 주문까지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엔 다른 남자 승무원 한명이 내 남편 역할로 앉았다. 우리 반에는 한 무리의 스페인어를 쓰는 동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인 카를로스였다. 갈색 곱슬머리에 파란눈의 이 친구는 내 옆에 바짝 다가 앉더니, "내 작고 귀여운 부인, 안녕!"이라고 낮게 속삭였다. 하필, 나는 안전교육에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내가 안고 있던 인형은 너무나도 더러웠는데 카를로스는 그 인형 역시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허니,우리 아기 이름을 '처키'라고 해야겠어" 하고 씩 웃었다. 하필, 나는 또 웃고 말았다. 창 밖을 보니 하필, 밤비행이었다.(LED로 밤하늘을 보여줌) 밤비행은, 승객에겐 로맨틱했다.
'와, 이 녀석 잘생겼는데 유머감각도 남다르군.' 속으로 난 이렇게 딱 한번만 생각하고 내 가짜 남편과 약 20분간의 신혼여행을 했다. 연기에 심취해 조교에게 별 쓸모도 없을 연기 칭찬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비행이 끝나고 카를로스는 다정하게 내게 손키스를 날리고 우리 아기 처키를 친절하게 짐칸에 집어 던져주기까지 했다.그리고 곧장 친한 스페인어 무리로 가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인상은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약 한달 가량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던 우리 반은 또 하필, 한 건물 안에 살고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수영장에서 당구장에서 공용 거실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나와 친한 킴은 내가 카를로스와 어떻게든 잘되길 바랐다. 물론 내가 매일 그에 대해 말한 탓이기도 할테지만. 어리고 미숙한 스물 몇살의 나는 카를로스에게 아침마다 스페인어를 연습해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같이 저녁 먹을래, 수영장 파티에 올래? 하고 고등학생처럼 순진하게 쪽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늘 묵묵부답이던 카를로스는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숙소를 이사하면서 내 시야에서 마음에서 잊혀지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년 뒤 어느날, 나는 비행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피곤한 몸을 뉘이다 일년 전 나와 같은 반이었던 폴란드 출신의 마리아를 만난다. 잘 지내냐는 인사와 함께 문득 카를로스가 궁금해진 나는 "카를로스랑 스페인 아미고들은 잘 지내?"하고 물었고. 돌아오는 답은 낯선 세계였다.
"카를로스는 최근에 남자친구랑 같이 이사했어. 걔네도 벌써 일년이나 만났네."
나는 충격에 휩싸여 숙소로 가는 내내 울었다. 왜인지 모를 눈물이 났다. 나중에 같은 반이자 친한 오빠같은 동료였던 아흐마드에게 전화를 해서 너는알고 있었느냐 물었더니 아흐마드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카를로스가 원하지 않았으니까."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의 명료한 대답 안에는 친구인 카를로스를 배려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걸 이해하지 못한 이기적인 내 모습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그래, 그랬구나.
이후 내가 잘생긴 나의 남자동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게 식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문 나의 게이다(동성애자를 가려내는 레이더, 촉)는 잘 작동했다. 피하고 또 피하다보니 나는 그럭저럭 동료와는 거리를 두는 승무원으로 자라게(?)되었다. 이게 다 하필, 첫 안전훈련에 카를로스랑 부부의 연을 맺었던 경험 탓이다.
잘 지내지 처키 아빠. '그라시아스, 아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