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사람

내 정체성을 경계인으로 결정하다.

by 곶감이

난 늘 애매했다.


글을 잘 썼지만 고등학교 때 받은 백일장에서의 상들이 끝이었다. 대학 시절엔 신춘문예에 떨어졌다. 책을 좋아했지만 편독이 심했다. 영어와 국어 미술 정도는 잘 했지만 그 외에는 잘하지 못했다. 그림을 즐겨 그렸지만 미대에 갈 실력은 못되었다. 외모가 그럴듯 해서 미인대회에도 나가서 군 단위의 00아가씨 선발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미인대회들을 돌아다니며 연예인을 발굴하던 연예 기획사에서는 한복을 입고 민속촌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있던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울로 봐도 그만한 감은 아니란 것을 나 자신도 일찍이 알았다.

이런 경력이 무색하게 대학 시절 한복을 차려입고 대형마트에서 꿀을 팔았다. 파는 데에도 소질은 그닥 없었고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가 승무원이 되었다. 그것도 국내에서 주류라 칭하는 대한항공이나 아시나아 항공이 아닌 해외의 외국항공사다. 물론 규모로 따지면 대한항공의 몇 배나 큰 항공사지만 내가 그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 아니란 점. 애매함의 끝판왕이던 나는 결국 외국인 노동자로 전락(?)한다. 항공사에 팔려 갈 당시의 나는 대단한 취업관문을 통과한 듯 기세 등등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탑승함과 동시에 나는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 팔려가는 심청이와 같은 심정이 되어 이후 8년 내내 비슷한 감정으로 겸손함을 유지한 채 살았다. 그만큼 해외살이하며 남의 돈 받아먹기는 쓰디 쓴 삶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공중전을 겪으며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보고, 만난 많은 이들이 나처럼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위안과 위로와 존재 자체의 고귀함을 처음 느꼈다. 다수의 필요에 의한 삶이 아닌 자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해 숭고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심청이로 팔려가서 심봉사처럼 눈이 뜨인 것이다.

그 깨달음에 여러분도 동참하여 살만한 인생, 잘 살아보시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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