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용 문신을 한 승무원

인도 펀자브 출신 크루 키란

by 곶감이

인도인 크루 키란은 등에 문신이 있었다. 콧대가 높고 살짝 휜 모양과 큰 눈이 매력적인 미인상이었다. 내가 칭찬을 하자 본인도 안다는 듯 자랑스레 고향인 펀자브 지역의 특징이라고 했다. 유니폼은 면으로 된 불투명한 하얀 줄무늬 블라우스여서 여차하면 등의 문신이 비칠 지경이었다. 속옷을 받쳐입을만도 한데 키란은 그 날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국 방콕에서 문신을 한지 몇시간이 채 되지 않아 유니폼을 입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일반석 승무원들을 리드하고 감찰(?)하는 부사무장이었다. 그루밍, 즉 사원의 복장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따질 직책이었고 그런 키란의 용 문신이 공항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사건은 음식 서비스를 할 생겼다. 앞 또는 뒤에서 음식이 든 밀카트를 끌면서 서로 도움이 필요하면 어깨나 등을 살짝 터치하는 경우가 있다. "아악!" 키란이 다른 동료의 스쳐지가는 팔꿈치에 등 어딘가를 스치고 괴성을 질렀다. 나는 피가 배어 나오는 키란의 어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피, 피!" 주변의 승객들은 대부분 헤드셋을 끼고 있었지만 우리의 대화가 몇몇에겐 들렸나보다. 무슨 일인지 고개를 죽 빼고 승무원들을 바라보는 승객들을 무시(?)하고 동요하지 않은 척 우린 서비스를 이어나갔다. 당시 나는 일반석 승무원들을 리드하고 감찰(?)하는 부사무장이었다. 음식 서비스가 한창이지만 나를 키란을 화장실로 데려가 유니폼을 벗겨 상태를 확인했다. 등에는 용문신이, 어깨까지 꼬리와 수염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키란의 살갗은 벌겋게 부어있고 용은 피 같은, 아니 진짜 피를 몸 군데군데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좁은 화장실에서 불편한 자세로 엎드린 키란의 등에 탈지면과 약을 바르며 하나마나한 소릴 했다.

"대체, 왜그랬어?"

"남자 때문에. 남자. 남자 때문에!"

남자 때문에 출근 직전에 등 전체에 용문신을 했다?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긴 이야기를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화장실 밖엔 줄이 서 있을테고 식사 서비스는 아직이며 콜벨이 한창이었다.

내가 일하던 항공사는 다국적 항공사이자 승무원 대다수가 2-30대인 젊은 회사다. 연애와 결혼이 최대 화두인 것은 당연지사. 승무원을 관리해야하는 내 입장에서도 이는 용 문신의 사유로서 꽤나 심각한 축에 속한다고 여겨졌다.

"비행 끝나고 보자구,"

으흡으흡 신음을 삼키며 유니폼 블라우스를 겨우 입는 키란을 기다렸다가 같이 나왔다. 예상과 같이 화장실 앞엔 승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여자 승무원 둘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광경을 이상하게 여기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매니저에게 메일이 와 있었다. 네 비행에서 화장실에서 여자 승무원 둘이서 오랫동안 화장실을 썼다는 승객의 항의가 있었는데 무슨 사유인지 적어 제출하라고.

마침 아침 조식을 먹으러 갈 시간, 지체없이 키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사무장에겐 승무원 전체의 투숙 정보가 있다.) 키란은 조식 뷔페 대신 자신의 방으로 와 달라고 했다. 문을 열자마자 매케한 담배 연기가 눈을 가렸다. 이 호텔엔 흡연이 가능한 층이 있었는데 키란의 방이 그 중의 하나.

'흡연을 해야해서 나를 부른거구나.' 아침 7시 반이었지만 키란은 이미 화이트와인 반병을 마시고 있었다. 핑계를 듣자니 비행 근무시간 24시간 전에만 음주가 가능하니 지금 마셔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술과 담배가 없인 할 수 없던 키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키란의 이야기. 눈이 왕방울만하고 속눈썹은 낙타같은 그녀는 갈색 피부에 해를 등지고 있었다. 여기에 담배와 와인잔을 드니 더 극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담배연기에 숨을 참으며 이것까지만 태우라고 부탁했다. 안그럼 나간다고.. 키란은 사복을 입으니 더욱 발리우드 배우 못지 않은 외모와 몸매였다. 당장이라도 박수를 치며 춤을 출 것 처럼 허리까지 오는 숱많은 긴머리를 밧줄처럼 땋아 앞으로 넘긴 모습으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어. 고향에, 5년간 내가 쫓아다녔어. 내가 이렇게 성공하고 돈도 잘 벌면 (E항공 승무원이 인도에 사는 의사보다 잘 번다고 했다.)나한테 관심을 조금 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네가 그랬지 나더러 예쁘다고. 그래, 나 좋다는 남자도 있었고 나도 잊을까 했는데 그렇게 잘 안돼. 우리 집에서도 결혼하라고 난리였지, 인도에선 정략결혼을 많이 하거든? 그래서 다른 남자들 소개도 많이 있었어. 그런데 내가 이 남자 때문에 말이야 부모님이 나 결혼시킬까봐서 몇년간 휴가 때 인도에 가도 집에 안갔어. 몰래가서 그 남자만 만난거지. 근데 나는 그동안 나이가 들어버렸지, 남자가 지난주에 결혼을 한다는거야. 갑자기, 친구가 그래.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방콕에 가는 비행에서 어떤 승객한테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걸 들었어.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에 갔더니, 용이 그려진 부적을 주더라고. "


난 사기를 당한 이 여인이 가여워져서 외쳤다

"얼만데?"

"얼마 안했어."


다행이다 싶어 이야길 마저 듣는데 용 문신을 하게 된 결론은... 황당했다.

부적을 가지고 호텔로 향하다가 너무 서러워서 바에 들려서 술을 마셨단다. 그리고 다음날 호텔에서 일어나보니 등에 용문신이 있고 부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다른 안좋은 일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려던 찰나, 키란은 울고 있었다.

"몸에 부적을 새겼어도 늦었겠지?"


이 정도면 알콜의존증이다 싶게 마시는 동료들이 가끔 있었다. 두바이는 주변 무슬림 국가들이 Sin city그러니까 범죄의 도시라고 별명지어 부를 만큼 '무슬림답지 않은' 금기시 되는 것들이 많이 허용되는 도시이다. 일반적으로 호텔이나 라이센스가 있는 식당이 아니면 주류나 돼지고기 판매가 허용되지 않고 사람들도 알콜라이센스라 있어야 술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두바이에 사는 승무원은 직업 특수로 해외에서 매번 최대 4리터의 주류 반입이 가능하다. 물론 직업 특성상 마시면 안되는 시간이 있기도 하지만, 키란은 합법적인 내에서 허용치를 과감히 흡수하는 편이었다.


키란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을거야. 담배 끊으면서 같이 잊을거야."


키란의 방에서 나오자 옷에선 담배 냄새가 배어 이대로 조식을 먹으러 가도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키란의 등은 이내 아물었을 것이다. 몇 달 뒤에 쌩쌩한 걸음으로 회사 본사 가옥을 가로질러 걷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의 흉터는 가라앉았을까, 술은 여전히 많이 마실까. 금연을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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