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방파
두바이에서 네비게이션에 의지해서 운전을 하다보면 길을 잃기 쉽다. 두바이는 네비게이션이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도시다. 늘 도시 건설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짜리 장거리 비행을 몇번 다녀오면 없던 건물이 생기기도, 집 앞에 모스크가 떡하니 생기기도 한다. 이 건설 현장에는 당연하게도 현지인들을 대신할 인력들이 대거 투입된다. 이들의 국적은 주로 '인스방파'다.
왠 조직폭력배의 이름같다.
'인스방파'.
한국인들 사이에서, 네 국적의 사람들을 아울러 줄임말로 부르던 은어다.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한국인 입장에선 이들의 언어나 외모가 비슷해서 구분하기 쉽지 않고 이 국적의 남자들이 대부분 공사 현장, 비교적 낮은 임금의 3D직업들을 하고 있기에 아울러 부르던 습관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보기보다)어려도 집안의 가장인 경우가 많았다. 두바이의 겨울이자 공사 집중 계절인 10월에서 5월 사이에 몇 개월간 일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스방파의 국적이더라도 영어를 하거나 다른 기술이 있으면 다른 국적과 마찬가지로 공사 현장직 외에도 다른 화이트칼라 직업이나 몸이 좀더 편한 직업에 종사했다.
인스방파 아재들은 주로 무리지어 다녔다. 마트에 장을 보러가더라도 함께 다녔다. 그 무리 앞을 지나가면 뚫어져라 쳐다봐서 민망하고 때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인스방파 아저씨들 입장에선 처음 해외를 나왔기 때문에 나같은 동양인 여자가 낯설고 신기했을거다. 마치 지금도 한국의 시골마을에 금발의 파란눈이나 아프리카계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과 마찬가지일테다.
내 지인의 비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파키스탄 비행이었다. 승무원이 식사 서비스를 하고 나중에 식판을 걷으러 갔는데 식판만 있고 음식을 담은 작은 그릇들이 없었다. 갤리(기내의 부엌 역할을 하는 곳)에 가서 다른 승무원이 그릇들만 따로 받았는지 물어도 봤지만 받은 사람이 없었다. 의아해서 그 손님에게 물어도 영어를 하지 못해 서로 마주보고 고개만 갸우뚱했다.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짧은 비행이라 다른 일들이 바빠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돌아서던 승무원의 눈에 이 승객 아저씨의 다리 사이의 쇼핑백이 보였다. 쇼핑백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비닐봉투 안에 식사 때 제공되었던 반찬과 식사가 뚜껑 채 그대로 들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승무원이 손짓발짓 해가며 물으니 아저씨 옆에 탄 사람이 겨우 통역 비슷한 것을 해줘서 들을 수 있었던 한 단어.
"빼밀리! 빼밀리!"
가족.
가족들 주려고 기내식을 비닐봉투에 챙겼던거다. 선량한 표정의 아저씨는 해맑게 웃으며 도로 가져가냐는 제스쳐를 취했고 승무원은 그대로 두었다. 아니 어쩌면 기내 간식들을 더 챙겨줬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 비행에서는 공사 현장에서 다리를 다쳤는데 보험이 안되어 치료를 받지 못한 채로 곪아가는 발을 대충 싸매고 탄 사람도 있었다. 곧 구더기가 나올거 같이 보이는 상태의 발을 하고서도 함께 탄 동료들과 함께 히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던 아저씨가 눈에 선하다.
두바이의 도로 표지판은 모래 바람에 의해 흐려지거나 뜨거운 햇볕에 빛이 바라는 경우가 있다. 한증막 같은 날씨에 긴 대걸레와 비슷하게 생긴 걸레와 물양동이를 2인 1조로 들고다니며 이 표지판들을 닦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역시 인스방파 아저씨들이다. 몇 해 전부터는 매년 6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야외 및 직사광선 아래 작업은 12시 반부터 오후 세시 사이에 작업이 금지되었다. 안전사고로 다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EBS에서는 '두바이의 두 얼굴'이란 제목으로 두바이의 건설노동자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이들의 삶이 궁금하신 분들을 찾아서 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우연히 이들이 실제로 숙식을 하는 숙소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실제 이곳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호기심에 구경(?)을 간 것이었다. 이 구역은 한마디로 금녀의 구역이자 한국인들은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동네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한국의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시멘트로만 지어진 건물인데 방 하나에 3층짜리 침대가 두개 있고 침대 사이의 바닥에도 매트리스를 대신한 거적대기 두어장 깔려 있었다. 침대엔 손으로 빤 바지며 티셔츠가 널려있다. 지인의 말로는 심지어 이 침대들은 밤낮을 교대로 사람이 바뀌며 지내는곳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방에 13명-15명이 지내는 구조다. 방과 방 사이에는 커다란 솥에 토마토와 양파 몇조각이 둥둥 떠있는 맹물에 가까운 국이 끓고 있었고 그 사이를 오가던 아저씨들은 카메라를 든 나를 원숭이보듯 구경했다. 민망함도 잠시 나는 내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삶을 보며 이들을 향한 경외심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 나를 구경하듯 보던 아저씨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더 대비되는 하얀 흰자위와 이를 드러내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던 아저씨들의 속살을 들여다 본 기분으로 건물을 나섰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더럽고 때탄 옷을 아무렇지 않게 걷어올리고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나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이런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어떤 일에도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 그들의 표정에서 일기예보의 90퍼센트는 늘 맑음인 두바이의 날씨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