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한국어 중급반에는 아프가니스탄 학생 세 명이 있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직후 한국 정부는 아프간 내 한국 관련 기관과 협력해 온 현지 직원 및 가족들을 안전히 철수시키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일명 '미라클작전.' 나의 학생들은 이때 특별기여자로 입국한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세 학생은 나이도 비슷하고 종사 분야도 비슷했으며 자녀가 다섯 명인 것도 같았다. 내 또래임에도 고등학생의 자녀가 있는 그들이 타국에서 가장으로서 느낄 무게가 얼마나 클지 가늠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의 자녀들은 학교에서 또래집단의 무차별적인(?) 한국어 공습에 의해 한국어를 빠른 속도로 배우지만 성인의 경우 생활반경이 일터나 가정 내로 좁혀지기에 본인의 노력에 따라 한국어 습득 능력이 달라진다. 우리 반의 이 세 명 중 한 명인 아흐마드 씨는 질문이 많아서 질문왕으로 별명을 붙여줬다. 실제 본인이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일까. 아흐마드 씨는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학습하는 태도가 공부 잘하는 비결을 아는 사람이었다.
요리법과 관련한 한국어를 배우던 날이었다. 고추장, 마늘, 간장 등 한국음식을 요리할 때 필요한 요리 재료들을 공부했다. 쉬는 시간에 아흐마드 씨가 도움을 청해왔다.
"선생님, 주정이 안 들어간 간장 어디서 찾아요?"
나는 이전엔 간장에 술이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설령 들어간다 하더라도 요리할 때 맛술도 쓰는데 별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무슬림인 아흐마드 씨 입장에선 주정의 유무가 굉장히 중요했다. 쉬는 시간 내내 간장의 종류와 성분표를 찾았지만 아흐마드 씨 말대로 국내 생산 중인 간장 중에는 주정이 들어가지 않은 간장이 없었다. 가까운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한 할랄 인증 간장이 있긴 했지만 배송료까지 생각하면 가격이 꽤 비쌌다.
"음, 불고기는 못하겠군요."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하는 아흐마드 씨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아들이 불고기를 꼭 먹고 싶대서 만들어주려고 했다고 한다. 모른 척 그냥 사 먹으면 안 될까, 싶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흐마드 씨는 덧붙인다.
"선생님 덕분에 이제 한국 간장에 주정 다 들어간 거 알았어요. 이제 간장 들어간 음식 안 먹어요."
고마운 걸까, 열심히 검색해 준 나를 탓하는 걸까. 알 수 없는 뉘앙스로 말한다.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긴 어려울걸요, 아흐마드 씨.'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급식에 할랄음식이 제공되지 않아 아이들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했다. 막내는 이제 6살이지만 아직 할랄음식을 구분할 줄 모르고 유치원에서 할랄인증 음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한국 아이들처럼 보육기관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내가 양육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아내는 아이가 집에 갇히다시피 생활하기에 한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국어가 서툴다고 한다.
부디 아흐마드 씨의 아들이 빠른 시일 내에 간장으로 요리한 맛있는 불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길 바라본다. #할랄 간장, #주정 무첨가 간장 #기코만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