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쩔 건데>
“아빠! 경찰 부를까?”
마음이는 아빠보다는 대문 밖의 남자가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물었다. 아빠도 남자도 마음이의 수작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 맞다. 아빠가 경찰이지.’
출근도 아직 하지 않은 서에 신고를 해서 동료 경찰들이 온다면 조금 창피할까, 하고 마음이는 체면을 먼저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이는 체면을 생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영걸은 대문을 사이에 두고 낯선 남자와 대치한 채 서 있었다. 후두두둑 비가 몰아쳐서 영걸의 머리카락도 문 밖의 사내도 흠뻑 젖었다. 이웃 사람들은 하나둘 우산을 받쳐 들고 나온 사람,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사람 등등 재미난 구경 각잡기에 바빴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동네 한가운데 이사 온 집의 드라마를 시청하려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사운드를 제대로 듣기 힘들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영걸은 문득 주변 이웃들을 의식하고 제법 근엄한 체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 누구? 강 누구요? 나는, 나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어지는 영걸의 궤변.
“거 내가 공무원이라고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와서 행패 부리고 돈 뜯어낼 생각이라면…”
마치 범죄자를 다그치는 듯한 어조에 문 밖의 남자는 뜻밖의 행동을 했다. 그는 아예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느려지는 말투와 발음이 어눌한 걸 보니 이른 아침부터 술을 좀 마신 모양이다.
“으어어어어, 솔희가, 솔희가 너랑 바람이 나서… 으어어어 솔희가 착한 앤 데 너 어쩌다가 너 같은 새끼를 만나서… 우리 부모님 장모님 다 몸져누워서. 으어어어어, 내가 너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저씨! 아저씨?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으어어어, 아저씨! 온영걸 씨! 온 형사님. 형사님이라면서요. 왜 거짓말을 해요. 나… 나한테까지 이러지 마요. 으으어어어어.”
영걸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온 형사’라고 바뀌는 순간, 걸어 잠근 문고리를 열어 대문을 열고 말았다. 그의 마음의 빗장문을 열게 한 그 ‘형사’라는 단어. 자신의 수치를 동네 사람들에게 내어주더라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같은 것.
대문이 열리자마자 주저앉았던 남자가 언제 취했느냐는 듯이 잽싸게 일어나 영걸에게 덮쳤다. 아무리 형사라 해도 제 나이보다 젊은 남자의 공격엔 당해낼 도리가 없어 그대로 쓰러졌다. 마음이는 문지방에서 뛰어내려 마당을 가로질러 빗속을 달렸다.
“아빠!”
쏴아아 아아아— 갑자기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우르르 쾅쾅,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경보음처럼 울렸다.
영걸 위로 엎드려진 남자는 상체를 일으켜서 핏줄이 선 주먹을 영걸에게 날린다. 그러곤 그대로 혼자 고꾸라져 버린다. 영걸은 빗겨 맞은 턱을 문지르며 비척이며 마음이의 부축을 받는다. 남자와 영걸 모두 진흙탕 속 돼지들처럼 알아보기 힘들게 더러워져 버렸다. 영걸은 마음이에게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넘어진 남자를 일으켰다. 어느새 마음이도 아빠를 도와 낯선 남자를 일으키고 있었다.
술 냄새가 훅 끼쳐 오른다. 남자는 울고 있다.
영걸은 여태까지 이 사건을 두고두고 공무원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협잡꾼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선처해 준 사건으로 이야기의 마무리를 한다. 마음이는 이 궤변을 여러 번 듣다 보니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남자의 몸에서 나던 술 냄새와 남자의 울음을 기억했다. 거짓 협박을 할 사람이 태풍이 부는 그런 날, 그것도 이른 아침에 술까지 마시고 찾아올 리는 없었다.
영걸은 뭐라고 나긋나긋 남자에게 말을 건네며 대문 쪽으로 데려갔다. 남자는 듣는지 마는지 여전히 소처럼 울었다. 진흙 범벅이 된 남자의 행색과 그의 울음소리는 구경하던 이웃들을 당혹게 했다. 남자의 울음소리는 아내를 잃고도 주먹 한번 제대로 못 쓰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더 안쓰럽게 보이게 했다. 이미 볼장 다 본 이웃들은, 아니 남자의 처지에 양심이 생긴 이웃들은 하나둘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떴다.
영걸은 남자를 다독이며 달래면서도 곁눈질로는 마음이를 살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는 느낌은 아니었다. 비바람 소리에 마음이는 아빠의 말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남자의 울음소리만은 귓가에 또렷했다.
영걸과 영걸의 부축을 받은 남자가 대문가에 이르자 대문이 자동문처럼 끼익 열렸다.
대문 밖에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있어서 어깨와 턱 사이에 검은색 장우산을 받치고 있었다. 빗속을 뚫고 선명하게 보이는 눈빛. 마음이는 이처럼 강렬한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보니 남자 어른이 아닌, 마음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우르르 쾅쾅— 천둥과 번개가 치는 중에 마주한 그 아이의 눈빛은 번개 같은 섬광이었다. 이후에도 마음이는 그 아이를 오래 보지 못한 날에 아이의 생김새를 떠올리면 번개가 치듯 눈빛만 떠오르곤 했다.
어깨가 다부지고 눈매가 날카로운, 검게 그을린 콧잔등과 야무지게 닫힌 반듯한 입술. 진흙탕에 만신창이가 된 두 남자를 코앞에서 맞이한 이 어린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다만 남자들 너머 마음이를 응시했다. 마음이는 비에 홀딱 젖은 채로 물미역처럼 늘어진 머리카락 너머로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인물을 마주한 마음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마음이와 영걸은 동시에 말했다.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