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허세 좀 부리지 마.
그걸 근자감이라고 해.
근거 없는 자신감! 알아?
내가 봤을 때, 사실 넌 그렇게 자신감을 가질 정도는 아니야.
뭐라고?
근거가 있다고? 그게 뭔데? 어디? 어디?
헉,
뭐?
네 몸속 가득 자리한 자존감? 그게 근거라고?
교실 속 아이들을 보면 참 가지각색이다. 잘하지도 못할 것도 같고, 그 능력도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데, 늘 자신감이 가득 찬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자신감 없이 어떤 일 앞에 소심 해지는 아이가 있다.
수업 중 아이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이거 해보고 싶은 사람 있나요?”라고 말했다. 역시, 늘 손을 드는 아이가 또 손을 헐레벌떡 든다. 친구들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와, 쟤 근자감 쩔어.”
말이 다소 거칠다고 지도한 후에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그래? 이 친구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 뭐든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우리가 모를 뿐. 선생님은 이 자신감의 근거가 있든, 없든, 뭔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내 자신감의 근거를 찾느라 아무것도 못 해보는 아이와 그래도 뭐든 해보는 아이가 10년 후 얼마나 다를까?”
‘근자감’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축약어이다. 그다지 긍정적인 표현의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민폐로 분류되는 단어 중 하나다.
자신감은 철철 넘치는데 본인을 뺀 누가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자신과 주변을 현실적이지 못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 만용과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표현이다.
근거 없이 자신감만 갖고 행동하면 본인의 정신건강에야 이로울 수 있어도, 앞으로의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허세로 시작한 사업이 망해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례들처럼 말이다. 그럼, 이 근자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정신승리’이다.
일본의 교육학자인 하야미즈 도시히코 교수의 저서 "그들은 왜 남을 무시하는가"에는 ‘가상적 유능감’이란 말이 나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확장된 자아’, ‘위축된 자아’라는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위축된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로 ‘확장된 자아’를 드러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를 ‘가상적 유능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직역을 해보자면, 있지도 않은 자신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신조어로 ‘근자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내리는 결론은 이런 ‘가상적 유능감’은 극복해야 하는 심리라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남을 무시하는 이유와 내가 무시받는 이유가 모두 이 ‘가상적 유능감’에 있다고 했다. 역시 이 책에서도 이 단어를 부정적인 용어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가상적 유능감, (아니 근자감이라고 말하겠다.) 근자감은 우리가 탈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2007년도에 번역 출판되었으니, 그 이전에 썼던 글이었을 테고, 그 시기만 해도, 괜히 자신감만 높은 사람을 겸손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뭐든 자신을 홍보해야 잘 살 수 있는 시대다. 홍보를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과장과 치장은 필요하다. 10개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곧 20개를 가질 사람이다.”라고 말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능력이 다 채워질 때까지 그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그 능력을 써볼 기회도 잃은 채 묻힐 수가 있다. 나중에 되어 ‘나 뭐 했지?’ 할 것이다.
늘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첫 번째는 자기 효능감도, 자존감도 둘 다 높은 사람이고, 둘째는 자기 효능감은 낮은데 자존감은 높은 사람이다. (자기 효능감은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아는 것을 의미하고, 자존감은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근자감 높은 사람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자존감은 높은데, 자기 효능감은 낮다. 자기가 뭘 잘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자신을 꽤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기 효능감도, 자존감도 둘 다 높으면 제일 좋겠지만, 둘 다 없는 것보다는 자존감만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적어도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늘 당당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믿고서 뭘 자꾸 하다 보면 자신이 뭘 잘하는지, 어떤 부분에 능력이 있는지 아는 건 시간문제다. 자기 효능감쯤은 나중의 문제일 수 있다.
소심하고, 겸손의 미덕을 갖춘 우리 집 첫째 아이는 어떤 일을 앞두고, “엄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꼭 나의 허락을 구한다. 반면에, 정말 목소리만 큰 둘째 아이는 늘 자신이 잘한다고, 잘할 수 있다고, 그러니 다 할 거라고 난리다. 나와 신랑은 늘 둘째보다 첫째 아이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한다. 살면서 뭔가를 해볼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 수 있으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하는데, 그 경험에서 나서지 않을까 봐. 숨을까 봐.
그래서 난 우리 아이들이나 학교 내 반 아이들이 뭐든 자신감을 갖고 해보길 바란다. 비록 누군가로부터 근자감이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근거? 있어. 넘쳐나지.”라며 기세 등등하고 싶은 일들 머뭇거리지 않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근자감이라도 있는 아이로 키우자.
그 아이의 몸속 가득 자존감으로 꽉 채울 수 있게 도와주자.
왜? 아이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근거가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