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당신은,
당신의 내일을,
모레를,
1년 후를, 그리고 10년 후를
알고 있나요?
전혀 모른다 구요?
자! 마술 연필을 줄 테니,
마음껏 상상해서 그려보세요.
이루어질지 누가 알겠어요?
중학생 때 하늘을 참 많이 쳐다보았었다.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잠깐 멈춰 캄캄한 하늘을 보며 책에서 보았던 별자리를 찾는 일이 나에겐 지친 하루에 대한 선물이었고, 감성이었으며, 사춘기의 표현이었다. 크게 ‘뭐가 되겠다.’라는 꿈이 없었기에 하늘을 보며 제일 많이 생각한 것이,
‘난 뭐가 될까?’였다.
내 미래가 정말 알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잠깐 미래로 가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오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나에겐 첫 꿈이 생겼고, 그 꿈을 위해 공부만 했다. 난 수학과 화학이 좋았기에 약대에 가고자 했다. 그리고 변리사 시험을 치고 싶었다. 중학생 때만 해도 “혜정아, 왜 그렇게 공부만 하냐?”라고 친구들이 물으면 “나? 우리 엄마, 아빠가 성적표 보면 좋아하시니까. 그냥 하는 거야.”라고 말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꿈이 생기고나서부터는 정말 즐겁게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언어에 약해서 수능시험에서 고꾸라졌고 나는 가고 싶던 약대에는 원서도 넣을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수, 과, 외만 보는 괜찮은 공대에 장학생으로 넣을 수 있었다. 그동안 늘 믿고 맡겨주셨던 엄마가 그제야 말씀을 하셨다. 교대에 넣어봤으면 좋겠다고.
“교대요? 그 학교는 어디에 있어요? 뭐하는 곳이에요?” 난 교대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과생들의 관심 대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학교였기 때문에 난 그냥 그곳이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도 바라시는 교대를 무시할 순 없었고, 가, 나, 다군 중 딱 하나만 양보하여 교대를 넣게 되었다. 세 군데가 모두 붙고 나니 , 엄마께서는 적극적으로 말씀하셨다. 교대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유는 그러했다.
나는 몸도 약하니 오래도록 공부하는 일은 힘들 것이다.
겁이 많아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게 낫다.
결국에는 난 부모님의 논리에 지고 말았고, 교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4년을 조금은 힘들게 지냈다. 내가 그려온 미래에 없던 길이어서 그랬는지, 스스로 적성에 안 맞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굳이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대학 4년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뭘 더 공부해봐야 할까?’,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등의 창조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나만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
학교생활 중 늘,
‘미래가 정해져 있어서 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참 싫은 곳이야.’ 라며 신세한탄이나 했다.
일반대학에 다니며 해외 연수나, 다양한 자격증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뭔가 더 커 보였다. 그래서 미래를 다양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교사 생활은 어떻게 보면 틀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나에게 ‘안정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가 잘 보이는 일’이라고 했다. 내 나름대로 그때그때 충실히 일하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교직생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새로운 내 미래를 그려보지도 않았고, 그게 불필요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경력이 조금씩 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부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드문드문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래서 유튜버도 하시고, 베스트셀러 책도 내신다. 교사생활을 하다가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화가를 하거나, 그림책 작가도 하신다. 한 분야를 더 공부하여 대학교 시간강사를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이 일을 버리고 도자기를 굽고, 재테크로 강의 다니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렇게도 새로운 미래를 꿈꿨던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지식하고, 틀에 박힌 생각에 갇혀 상황 탓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조금씩 갈증을 느낀다. 뭔가 새롭게 창조해 나가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하루하루 똑같은 내 삶이 다소 지루하다. 한번 사는 인생, 내일을 알 수 없는 그런 일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실망도 설렘도 느끼고 싶다.
아이 책장에서 ‘빨강머리 앤’이 보였다. 어렸을 때, 만화로, 책으로 참 재밌게 봤었는데. 그래서 책을 빼어내 단숨에 읽어나갔다.
앤이 말한다.
“뭐든 미리 알고 있다면 시시하지 않겠어요? 제가 상상할 거리가 없어지잖아요.”
그래, 맞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시시하게 만들고 있다. 누구 탓도 아닌 모두 내 탓이다. 그러면서 직업 탓, 환경 탓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 하늘을 보며, 내 미래가 어떠할지 물어본 적이 있다. 기대와 설렘으로 별에게 기도하기도 했다. 어느새 이십 년이 흘렀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라고 나의 숙제 목록에서 셀프 삭제돼 버렸다.
이제는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미래를 새로 그려보려 한다. 지금부터라도 시시하지 않은 내 삶을 위해 상상할 거리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빨강머리 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