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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는샘 이혜정 May 25. 2021

자! 선물이야! 네 자존감.

제13회 공유저작물창작공모전-안데르센 세계명작 재창작(인어공주)


왜, 그리워?


그립죠. 가족들도, 바다도.


이제야 후회되나 봐.


네. 그렇네요.


그러니, 왜 그랬대?


꿈이었어요. 하루만이라도 그와 함께 천국 같은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있잖아.

가장 중요한 것은 너야.

네 꿈에 네가 중심이 되어야지. 안 그래?

누군가로 인해 네 삶이 송두리째 변했잖아. 네게 미안하지도 않니?    

불멸의 영혼을 얻었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합리화시키지 마.

결국은 넌 사랑 때문에 너를, 가족을,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픈 인어일 뿐이야.





  어릴 적 인어공주를 읽은 기억이 난다.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고 인간의 다리를 얻는 인어공주가 그저 ‘예쁘지만 멍청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독자의 마음을 찜찜하게 만드는 그런 새드앤딩의 동화는 더더욱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싫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인데 왜 굳이 새드앤딩으로 만들어 놨을까?’


  마지막에,『 왕자가 인어공주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를 『물거품 되어 사라졌다.』 대신 쓰는 것이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인어공주의 원작은 해피앤딩이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인어공주의 선택이 얼마나 허무하겠어?’    


  하지만 원작도 내가 생각했던 앤딩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결국 인어공주는 원작에서든, 아니든, 물거품이 되어 있었다. 원작 속, 인어공주는 사라지지 않는 영혼이 되어, 아픔과 결핍이 없는 곳으로 승천하면서 어이없게도 행복해했다. 왕자의 결혼을 축복해 주면서.    


  ‘뭐지? 행복하다고? 왕자와의 결혼이 꿈이라며? 그럼, 네 가족은? 네 바다는?’   

  

  어린 마음에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았다. 글 내용도, 인어공주의 마음도.


  ‘불멸의 영혼? 그게 뭐야? 그게 뭐라고, 죽는 것보다 낫다고? 아, 내가 아직 덜 커서 뭘 모르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누군가가 내게,

  “불멸의 영혼을 가지게 해 줄 테니, 올라갈래? 저 위로.”라고 말한다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욕설을 동원해 퍼부을 생각이다.


  내 가족, 내 일, 내 터전을 절대 그것과 바꿀 수 없다. 턱도 없는 일이다.  

  

  결국, 난 예전에도, 지금도 인어공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를 넘어서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이 ‘인어공주’를 누가, 왜, 만들었을까?   

 

  인어공주 동화의 작가는 그 유명한 안데르센이다. 덴마크 출신의 안데르센은 불우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한다. 15세 때, 그는 무일푼으로 코펜하겐으로 가서 배우 일을 하며 돈을 벌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학교 공부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로써 인정받게 되면서 점차 유명세를 탄 안데르센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들 속에서 관심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감과 자괴감을 안고 있었다. 이것은 어릴 적 삶, 환경이 그 사람에게 깊이 박혀 뽑을 수 없는 뿌리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살면서 어쩌질 못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무서운 진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런 안데르센은 자신의 마음을 그의 작품들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고이 숨겨두게 된다. 작가 재키 울슐라거가 안데르센을 “성공한 미운 오리 새끼, 고결한 인어공주”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의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인어공주 또한 안데르센 본인을 모델로 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인어공주와 안데르센이 닮은 걸까?     


  안데르센은 평생 독신이었다. 그는 대인관계도 서툴렀으며, 그래서인지 여성들로부터 번번이 청혼을 거절당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실감에 빠져 섬에 들어가 적은 게 바로 이 ‘인어공주’이다.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늘 답답하고 애처로웠던 안데르센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인어공주에게 목소리를 뺏는다. 그러고 나서,

  ‘목소리가 없는데, 어떻게 마음을, 진실을 알릴 수 있어? 어쩔 수 없잖아.’라고 합리화했다.    


  나는 “목소리를 못 내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작가와 인어공주가 참 안타깝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답답한 행동들에 괜찮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데르센은 또 자신을 싫다고 차 버리는 상대들에게 끝까지 사랑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결국 인어공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존감 낮은 자신처럼, 인어공주도 정작 자신보다 왕자를 사랑하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단 하루만 인간이 되어 그 천국 같은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제 300년의 생명을 내놓겠어요. "   


  ‘휴......, 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인어공주는 과연 행복했을까? 불멸의 존재가 되어 만족했을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인어공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 것 같다. 바다를 보며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마음을 몰라주는 왕자를 미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자신을 탓하며 매일매일을 무너진 자존심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존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자존감이 있다면 절대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흔들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좀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틀림없이 후회하고 있을 인어공주에게 나는 ‘자존감’을 선물해 주고 싶다. 그녀를 만든 안데르센에게도 없던 그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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