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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는샘 이혜정 Oct 05. 2021

[웃는 샘의 그림일기] 엄마들의 관계파라독스


엄마 : 엄마는 너희를 가장 많이 사랑해.



아이 : 저 사람들 보다요?



엄마: 당연하지. 너희가 1순위란다.



아이: 그럼 왜 저들에게보다


더 잘해주지 않는 거죠?








두 형제가 다퉜다. 고집에 센 동생 때문에 형이 꽤나 화가 났나 보았다. 그래서 동생 책을 그의 책상 위에 세게 내리치며 올려놓는다.



“화정아, 그 행동이 뭐야?”


“화가 나서요. 쟤가 계속 자기 마음대로만 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표현하는 건 좀 그래.”


“기분이 너무 나쁘잖아요.”


“그래서 동생이 싫어?”


“그건 아닌데…….”


“그럼, 그렇게 표현하면 안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표현법을 써야 하잖아. 사랑하니까 잘해야지.”







며칠이 지나, 아이 친구네랑 만나 함께 놀다 집에 들어왔다.



아이가 나에게 슬쩍 묻는다.



“엄마는 우리를 사랑하나요?”


“왜? 당연하지. 엄마는 거짓말 안 해. 너희가 1순위로 좋단다.”


“그럼, 왜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해줘요?”







난 분명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잘해주지는 못했다. 더 화냈고, 다른 이들에게보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매일 소리도 질렀다.


완전 모순이다.







결혼할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했다. 평생 사랑하겠노라고. 너무 좋아서, 늘 함께 있고 싶어서, 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행복이라서 결혼을 했다.



난 분명 내 신랑을 사랑한다. 하지만 확실하게 잘해주지 않았다. 더 바랐고, 더 기댔고, 더 성질냈다.







내가 내지르는 화의 90퍼센트는 모두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세 남자.








아이에게 늘 말해왔다.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그러지 마.”


“사랑하는 형아에게 그러면 못써.”




신랑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날 사랑한다면 이것도 좀 해줘.”







왜 그럴까? 왜 나는 지극히 사랑스러운 저 세 남자들에게 그런 걸까? 왜 내 말을, 내 마음을 지키지도 못하는 걸까?



내 편을 좀 들어보자면, 엄마의 사랑은 좀 다른 문제이다. ‘사랑하니까 잘해준다?’, 이것은 엄마들의 사랑에 모순만 불어 일으킬 뿐이다.



엄마들은 내 아이의 사회적 관계와 미래를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 사랑은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일 수 있게, 미래에 잘 살 수 있게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화도 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기도 한 것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신랑에 대한 여자로서의 사랑은 잠시 접어둔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쓰는 에너지만큼 신랑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정확히 아내로서가 아니라 자기 아이의 어미로서 바라고 기대는 것이다.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방패는 함께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 엄마들의 파라독스 세계에서는 모든 게 존재하며 가능한 일이 된다.





사랑하지만, 일부러 화를 낼 수 있고,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른이들에게 더 잘해줄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노력을 덜 할 수도 있으며,


사랑하니까, 지쳐서 무심할 수도 있다.



엄마들의 관계 파라독스는 사랑하는 한 존재한다. 엄마들의 사랑이 담긴 모순은 언제든 용납된다.



그러니까 엄마들 외의 사람들이 이 모순을 좀 이해해주길 바란다.







*파라독스 :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모순된 관계


*알랭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에는 사회관계적 모순, 즉 사랑하는 부부사이에서의 모순적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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