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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 항상 까치발

by 웃는샘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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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하고 있지?

멋져 보이니?

사실은 나……

너 몰래

까치발 들고 있다!

높아 보이려고.

어때?

완전 속았지?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 그들은 그렇게 있기 위해 물 속에서 발을 쉼없이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야 균형을 잃지 않고, 물속으로 고꾸라지는 일이 없다고. 어릴 적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그냥 쉽게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얻는다면 우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나는, 이렇게 용 쓰는데 안되는 나는 너무 억울한 인생 아닌가?


피부가 좋은 연예인이 나와서 “그냥 세안만 꼼꼼히 했어요.”라고 하던가, 서울대학교 입학한 학생이 “그냥 복습만 꾸준히 했어요.”라고 하면 우선 보기도 싫어진다. 반대로, 날씬하고 예쁜 연예인이 나와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보이며 “살을 이만큼 뺀다고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꾸준히 식단조절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괜히 친근해진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둔 부모가 “이렇게 시키기 위해 어릴 적부터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쟤는 천재가 아니라 노력으로 된 아이에요.”라고 말해 준다면 괜히 그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뭔가 괜찮은 결말에는 힘든 여정이 있기를 바랬다. 어떻게 보면 정말 못된 심보다. 그냥 잘하고, 원래 예쁘고, 운 좋게 이룬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을 보면 너무 나와는 다르다는 이질감 때문에 거리가 생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수학과 과학을 무척 잘했다.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는데, 쉬는 시간만 되면 모두들 나에게 물으러 왔다. 수학 문제 뿐만이 아니라, 화학Ⅱ, 물리Ⅱ 문제까지도 척척 풀어내는 내가 신기했는지, 친구들은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

“야, 너는 수업시간에 맨날 졸면서 왜 이렇게 잘해? 완전 천재야.”

“학원도 안 다니는데, 어떻게 이 부분도 알아? 안 배운 거잖아.”

나는 친구들의 이런 ‘우쭈쭈’말들이 듣고 싶어서 사실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밤새 공부한거야.’라고.


선생님들이 매년 나가는 수업 대회가 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 우리 지역에서는 매년 수업을 연구해서, 그 수업을 공개하고, 그 수업에 대해 평가를 받는 대회가 열렸었다. 나는 내 수업을 잘 평가 받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인정을 받고 싶었다. 아이를 재우고 빈방에 들어가 몇시간동안 지도안을 짜고, 새로운 수업방법을 연구하였다. 좋아하는 소설책을 다 재쳐두고 수업관련 전문서적만 내리 사댔다. 물론 그렇게 노력하였기에 몇 번의 대회에서 1등급을 받았고, 덕분에 내가 원한 학교로 발령도 났다.

주변 선생님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혜정 선생님은 참 수업을 잘해요.”

“어떻게 그렇게 보고서를 잘 쓰죠?”

“남의 수업 지도안을 참 잘 봐주시네요.”

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내 책상 옆쪽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연습해 온 수업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수기로 작성한 지도안들, 수업자료 포트폴리오 파일들, 수업사례 보고서들……, 지저분한 우리집을 생각한다면 버릴 때도 됐는데, 나는 저것들을 절대 버릴 수가 없다. 내가 얼마나 물 속에서 발을 굴리고 있었는지, 나라도 저걸 보면서 알아줘야지 않을까? 해서.


내가 그동안 우아한 백조에게서 위로를 받았듯이, 굳이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야 한다면……,

절대 그냥 이루어지지는 않는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부러워하는 그 사람은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뭔가를 희생했을 거라고.

이 세상 0.01% 정도를 빼면, 모두가 그렇게 백조처럼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남몰래 까치발을 들고 있는 나나, 열심히 발을 굴리며 균형을 잡고 우아한척 하는 백조나, 참 기특하지 않은가. 목표도 없고 노력도 안하며 남들을 부러워하는 저들보다, 이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자들이 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분명, 언젠가는,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뭔가를 이루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며,

난 오늘도 까치발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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