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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자기주도적 힘들기

by 웃는샘 이혜정


다들 자기만 힘든 줄 안다.

착각하지 마

다 똑같아.

그러니까,

어디 비련의 드라마 주인공처럼

똥폼 잡지 말라고.






가끔 힘들어 하는 나를 발견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엔 좀 지나치다. 스스로를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으로 삼아 혼자 애절한 소설을 쓰는 일, 이젠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

돌아보면, 모든 게 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나의 자유의지로 결정했고, 실천한 것들이다. 그런데 왜 힘들다 하냐고?

늘 힘들다고 우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들은 첫째, 능력이 안 되는데 욕심을 내거나, 둘째, 방법적으로 무지해서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거나(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 마지막으로, 방법도 알고, 능력도 있지만 게을러서 뭘 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나는 늘 열심히 공부만 했다. 그냥 공부만 하고, 시험을 잘 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무지했던 것이다. 무작정 공부만 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법을 제대로 알고 효율적으로 했어야 했다. 나는 언어에 비해 수학과 과학을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잘했다. 정확한 답이 나오는 그런 문제에 흥미를 느꼈고, 하루 종일 어려운 경시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 푹 빠져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덕분에 내신성적도 좋았다. 고3 5월, 내가 원하는 학과에 수시를 넣었고, 논술 시험을 보게 되었다. 부산에서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엄마와 함께 기차에 올라탔다. 나의 첫 서울행이었다. 그 시험을 위해 난 몇 주간 수능공부를 미루고 논술에만 매진했었다. 당연히 열심히 했으니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저녁에 도착해 대학 근처 숙소에 방을 잡았고, 나는 시험이 있을 다음 날 아침까지 논술 공부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다음날, 시험장에 들어서서 배부되는 시험지를 보고서야 ‘내가 잘 못 알고 있었구나.’ 라고 깨달았다. 아직도 그 문제가 기억난다.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려고 한다. 풍속 00 의 바람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본네트의 각도를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지 삼각함수를 사용하여 제안해 보아라. ’

이런 게 수학논술이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문과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과 같이 찬반 논제를 두고, 나의 생각을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 적는 것만 공부했었다. 그것을 위해 평소 보지도 않는 신문도 봐야 했고, 뉴스기사, 다양한 책도 읽어야 했다.

결국 난 그 수시에서 떨어졌고, 수능도 언어영역을 심하게 망쳐 적성에 맞지 않은 교대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덜 힘들게 하는 사람은 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다. 나처럼 뭘 잘 모르고 무작정 하는 사람들은 힘들기만 하고, 결과는 좋지 못하다.


나는 요즘 힘들다. 작년부터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나의 생각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일이다. 교육적인 이야기, 생활 속 고민 등 서로 나누며 배우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즐거운 일에 왜 힘이 든다고 할까? 분명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고, 내가 꿈꾸며 선택한 것들인데,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 분야에서 능력이 좀 딸린다. 글을 쓰고, 그림을 색연필로 표현하는 일이 즐겁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작년에 난 벽지학교로 발령이 났고, 올해 내가 맡은 아이들은 고작 3명뿐이다. 그것도 여자아이 3명.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이 아이들을 위해 뭘 해줄까? 생각하다가 이야기를 만들어 읽어 주게 되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리반 아이들이었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재미있다고 읽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개의 아동문학 출판사에 투고를 해보았고, 덩달아 이 그림일기 샘플도 몇몇 출판사에 제출했다. 당연히 모두 퇴짜를 받았다.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다.’라는 정중한 거절 메일은 나에게 “당신의 글은 아직 아니되오.”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많이 아쉬웠고, 나의 부족한 능력에 힘이 들었다.


“애들아, 엄마도 힘들어. 엄마 일이 빨리 끝날 수 있게 너희들이 제대로 할껄 해놔야지.”

저녁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든 이 아이들을 잘 키워보고자 어릴 때부터 미술, 만들기 등을 함께 했고, 국어도, 수학도, 영어도 모두 나와 같이 학습한다. 이것 또한 즐겁게 시작했던 일인데, 요즘 체력 때문에 그런지 나이 때문에 그런지 의욕이 없다. 하는 방법도 잘 알고, 가르칠 능력도 있는데, 하기가 싫다. 퇴근한 후면 그냥 누워만 있고 싶고, 맥주에 생라면 부셔 먹으며 티비도 보고 싶다. 내가 게을러진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일 수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 늘 ‘오늘 저녁엔 뭘 해보지?’ 했던 내가 ‘아, 오늘 가서도 해야 하네.’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전보다 더 많이도, 더 열심히도 안하면서 아이들에게 힘들다고 난리 부린다. 하기 싫은 걸 하니 힘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난 힘든 사람들의 특성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결국 난 엄청 힘든 사람이었고, 지금도 힘든 사람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힘들 예정이다. 이런 말 하기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힘들다 하는 나는 괜히 똥폼만 잡는 하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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