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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 적당히 사는 법

by 웃는샘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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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오른쪽으로 기운 것 같은데?

아니야. 그게 아니야. 이젠 왼쪽이 기울잖아.

에잇, 아니야, 아니야.

균형 좀 맞춰봐.

사실……

그게 제일 어려운 거긴 해.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래전, 절대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100%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능력의 60~70%만 써야 해요. 절대 최선을 다해선 안된다는 게 저의 모토예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나요. 능력을 남겨 놓아야 해요.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놓으려고 애써요.”

“그래서 집에선 대체로 누워있어요. 함부로 앉아 있지 않아요.”


난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를 키울 때에나, 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뭔가를 하게 될 때, 나는 그 일에 푹 빠져 온 힘을 쏟는다. 그때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쓴다. 김영하 작가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왜 이리 지금 지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지도 않은 능력을 조금씩 분산해 가며 썼어야, 이것저것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다 잘할 순 없잖아. 잘하려면 하나를 파야 해.’라는 생각으로 내 눈 앞의 일에만 힘을 따 쏟아냈다.

3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친 후, 다시 출근하게 되었을 때, 난 학교 일과 집안일을 함께 잘 해내기가 힘들었다. 학교에서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고 집에 왔을 때, 어린이집 다녀온 우리 아드님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들은 5시가 되어서야 나를 보는 건데, 하루 종일 엄마의 품만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때 그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결국 난 휴직 때만큼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과거의 한때로 돌아가 잠깐 살게 된다면, 넌 언제로 돌아가고 싶니?”라고 묻는다면, 난 단 1초도 망설임 없이 대학생 때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다양하게, 그리고 적당히 삶을 살아보고 싶다. 대학생활 4년……, 아이를 낳기 전 직장생활 3년……, 나에게 이 7년은 마치 풍선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예쁘며 훨훨 나르는 자유로움을 지녔지만, 정작 그 속엔 아무것도 없다. 지금 후회를 하는 건, 그때 이것저것 적당히 많은 것들을 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시간이 많을 때 여행 좀 다녔어야지.’

‘그때 영어공부 좀 하지 그랬니?’

‘네가 선생님이 될 거였으면 미술이나, 피아노가 아닌 다른 악기 하나라도 좀 배워놨어야지.’

난 늘 이렇게 혼잣말하며 후회했다.



30대 중반이 넘어서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쓰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것. 난 또 이 일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으려 했다. 하지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일도 있고, 나의 아이들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일들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지쳐 버린 것이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쪽과 다양하게 천천히 쌓아가며 이루어내는 쪽. 김연아 선수나, 조수미, 손흥민 선수는 전자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내 입장에서 특별한 자들이다. 일찍부터 구체적인 꿈이 있었고, 어릴 때 그 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하지만 나처럼 그냥저냥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곳에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와 능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지금 내가 하나를 파봤자, 그 분야에서 뭘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을까? 정말 부정적이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일을 하고, 돈이 정말 필요한 만큼만 있는 사람들) 균형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가지 일에 너무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다. 그 한 가지가 잘되건, 잘못되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어진다.


시소 위에 올라가 보자. 중앙에 서서 내려가는 쪽을 위해 오르는 쪽을 살짝 밟아주고, 그쪽이 다시 내려가면 다른 쪽을 지그시 밟아보자. 집에 가서 우리 아이에게 사랑의 눈길을 줄 수 있게 딱 그만큼 일에 매진하자. 가정적인 엄마, 사랑을 주는 와이프의 이미지를 벗지 않도록, 딱 그만큼만 친구를 만나자. 내 일과 가정이 무탈할 수 있게만 취미생활을 하자.


자, 다들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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