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보이는 곳 말이야.
그곳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니?
우물 밖 세상에 관심 있어?
아~
우물 안 개구리로만 살까 봐?
그럼 어때?
우물 안에서 너만 행복하면 되는 거야.
이 곳에서 행복하지 않는데,
바깥에 나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 곳은 한반도 남해안의 동쪽,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이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지도상 가장 가까운 거제도로 발령이 났었다. 다행히 거가대교가 놓여 자주 부산을 오갈 수 있게는 되었지만, 어디를 가든 촌동네에 산다는 오해를 받기 일쑤이다. 서울로 연극수업 연수를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2박 3일 연수라서 그곳에 함께 참여한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 시간이 많았다.
“이혜정 선생님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거제예요. 거제도. 경남에 있는.”
“거기 섬 아니에요? 우와. 혹시 배 타고 들어가요?”
그동안 유명한 관광지에 산다고 우기며 다녔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거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었다. 하긴, 나 역시 발령 났을 때 3일 넘도록 울고만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칠천도라니……. 전교생이 29명밖에 없는 우리 학교는 거제도의 가장 큰 부속섬, 칠천도에 있는 벽지학교이다. 작년부터 나는 매일 아침 다리를 건너서 아이들을 만난다. 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애들아,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안 돼. 알겠지?”
“이곳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선생님은 너희들이 저 넓은 곳에서 살아보고 다양하게 느껴보고 경험했으면 좋겠어.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자기 발로 거제 밖을 별로 나가본 적 없는 이 학교 아이들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라며 궁금해할 뿐이었다. 사실, ‘왜 굳이 이 곳을 나가서 살아야 하지?’하는 표정이긴 했다.
주변 선생님들은 자녀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될 쯤이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곳에서 공부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지역으로 나가 더 잘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봐야 정신 차린다고. 학원도 그런 넓은 곳에는 넘치고 넘쳐서 좋은 곳을 고를 수도 있다고.
내 아이도 4학년, 2학년이니 이 학교를 떠날 때쯤 지역을 이동하면 되겠다고 조언까지 해주신다.
내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노래 불렀던 ‘우물 안 개구리 되지 않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게 옳은 일이다. 가능할 때 더 넓은 곳으로 나가보는 것도 참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큰 아이, 둘째 아이와 식탁에 앉아 수다를 떨 때였다. 그냥 난 별생각 없이 물어보았다.
“애들아, 우리 사는 곳을 바꿔보는 건 어때?”
둘째가 신나 하며 말했다.
“네. 엄마. 나도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요. 그럼 강아지 키울 수도 있는 거죠? 앗싸!”
참 단순하다. 우리 둘째는.
역시 첫째는 이런 둘째와는 다르게, 좀 더 ‘생각’ 이란 걸 하고 말한다.
“왜요? 엄마? 어디로요? 혹시 엄마 학교가 다른 지역으로 바뀌어요?”
나는 그때도 별생각 없이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너희들이 조금이라도 더 넓은 곳에서 살았으면 해서.”
그랬더니 둘째가,
“여기도 넓은데. 왜 더 넓은 곳에서 살아야지?” 라며 혼자 아리송해하는 눈치다.
첫째도,
“나도 지금 사는 곳이 좋은데.”라고 한다.
나는 갑자기 아이들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다.
“애들아, 우리 동네는 학원도 별로 없잖아.”
“엄마, 우리는 어차피 학원을 안 다니잖아요.”
안 통하겠다 싶어 나는 괜히,
“엄마 생각에는 너희들이 더 잘하고 훌륭한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약간 자만하는 것 같아. 안 그래?”라고 말해보았다.
그러자, 우리 철부지 둘째는
“엄마! 저 원래 잘하거든요! 흥! 자존심 상해.” 라 말하고,
애어른인 첫째는,
“엄마! 우리가 그 정도 구분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요. 저는 진짜 잘하는 거 맞아요.”라고 장난치듯 이야기한다.
“어이구. 너희들이랑 대화가 안돼. 이구, 잘난 척쟁이들!”
사실, 아이들에게 물어볼 일은 아니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꺼냈던 말이었지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기는 싫다. 내 아이들이 우물 안에서만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라는데, 이제 앞으로는 우주공간도 열릴 텐데, 이 작은 곳에서만 머무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서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아직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학원 없이도 아이가 자기 주도적으로 심화 공부까지 하고 있으며, ebs, 유튜브 등 온라인 교육 매체들이 넘쳐난다. 그것만 잘 활용해도 여느 학원 부럽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아두이노 코딩부터, 역사, 영어문법, 과학 등 내가 이곳에 살기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보, 당신은 계속 거제에 살고 싶어요? 다른 곳에서도 한번 살아볼까요?”
내가 신랑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물론 신랑의 답변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왜? 난 그런 생각 안 하는데. 여기도 좋잖아.”
“더 넓은 곳, 더 큰 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곳에 가도 다 똑같을걸. 뭐가 달라질 것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큰 도시로 나가 산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우리 집 규모의 집에서 살려면 대출을 2억은 더 내야 할 것이다. 주변에 그 많은 학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집돌이 두 아들은 집에서 나와 함께 공부할 것이다. 아, 문화생활? 그건 그다지 교양 없는 우리 집 남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뭐, 결론이 났다.
나는 그냥 우물 안에서 행복하게 살겠다. 물론 앞으로 살면서 부족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 우물 밖으로 나가면 될 것이다. 굳이 지금, 이 우물 안이 너무 편하고 좋은데, 낯선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난 앞으로
학교 아이들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우물 안에서 행복해지렴.’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우물 안에서도 행복하지 않다면 나간 들 어찌 즐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