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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 밀당이 필요해

by 웃는샘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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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말이야.

이것부터 배워야 돼.

바로 밀당의 법칙이야.

얼마나 유용한데.

요것만 잘해도 가르치는 우리 인생이 참 편해진단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연애를 하는 것과 참 비슷하다. 너무 받아줘도 안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밀어내서도 안된다. 늘 받아준다 싶으면 상대는 날 쉽게 여기게 된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해도 다 오케이더라.’라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곤 한다. 반대로 항상 통제를 하며 “안돼.”, “하지 마!”를 고수하게 되면 상대는 결국 힘에 부쳐서 떠나버리고 만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는 이런 ‘밀어내고’, ‘받아주고’가 적절하게 필요하다. 하나라도 지나치면 결국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나의 연애사를 돌이켜 본다면, 난 그리 ‘밀’, ‘당’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 괜한 자존심에 밀어내기만 했던 것 같다. 참 융통성이 없는 여자였다. 차갑기만 한 냉혈인간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데도 놓친 이들이 꽤 있었고, 후회되는 이별도 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 옆에 붙어 있는 이 인내심 짱인 신랑에게 크나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는 건 나의 ‘밀당 능력’이었다. 나는 이 능력 덕분에 이후의 교직생활이 훨씬 수월했다.(신랑에겐 비밀이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연애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부모나 선생님에겐 ‘아이가 이렇게 컸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이를 그 위의 경계에 두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다. 결국 아이는 저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그 바람 안에 들어와 버린다. 어떻게 보면 어른 중심주의의 독재적 육아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밀당’은 독재적이지 않다. ‘밀당’의 체계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부모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밀당의 법칙’을 실천해 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공부나, 생활지도, 인성교육 등 아이의 전인적인 성장을 위해 어른은 아이를 지도할 의무가 있다. 그럼 그럴 때마다 어떤 태도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가? 난 이 문제에 대해 이 ‘밀당의 법칙’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밀당’은 고도의 심리전이며, 나의 바람을 이루게 하기 위한 술수이다. 이렇게 말하니 꽤 나쁜 용어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럼 어른 중심적으로 밀당 방법을 소개해 보겠다.


우선 학습지도에서의 ‘밀당’이다. 예전에 ‘불안 심리학’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약간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아이가 스스로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었다. 불안을 조장하며 밀었다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려 할 때 당겨주는 것이다. 아이들마다 성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써본 방법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우리 집에는 극과 극의 아이가 살고 있다. 첫째는 겁이 많고 무던하여 뭔가를 할 때 성실하게 해낼 수밖에 없는 아이이다. 예민하지도 않고 순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분명하고 꿈이 있어 부모 입장에서 공부를 가르치기가 좀 수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면 그것이 동기가 되거나, 엄마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공부를 척척 해낸다. 그래서 약간의 밀당 실력만 있어도 우리 큰 아이 같은 애들은 엄마표 공부가 쉬운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겠다. 큰 아이는 8살부터 지금인 11살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수학 2 바닥, 국어 2 바닥을 풀고 있다. 물론 3학년이 된 이후부터는 영어까지 숙제 목록에 들어갔다. 영수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공부량이 훨씬 작기 때문에 그동안 불만은 들어본 적 없었다. 아이가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우리 화정이 영어가 좀 부족한데.’, ‘화정이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했으면 좋겠는데.’라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화정이가 요즘 푹 빠져있는 코딩이나 만들기로 밀당을 해보자 생각했다. 재미있는 코딩이나 만들기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물론 영어로 되어 있는 영상이었다. 좀 답답해하는 아이에게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더불어 조리 있게 말하는 그 유튜버의 표현력을 함께 관찰했다. 아이가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다. 드디어 그가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함께 살 책을 정하고, 공부할 분량을 자유롭게 계획하였다. 그리고 좋아하는 수학 문제 풀기로 유튜버 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난 늘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할 일을 제시해 주었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하는 바를 채우기 위해 강제적으로 교육시키는 걸로 보이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일이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지키려 노력한다.

문제는 둘째이다. 둘째의 성향은 음, 뭐랄까? 고집이 엄청 세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둘째가 어렸을 때, 나는 그의 성향을 알게 되었고, 사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쟤를 어떻게 한글 공부시키지?’, ‘형아만큼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쟤는 내가 가르치기 힘들 것 같은데, 나중에 영어는 학원으로 보내야 하나?’ 수많은 시나리오를 미리 떠올려 보면서 맥주와 함께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둘째 아이와 같은 아이들은 최소한의 것만 제시한 후, 질투 유발 작전으로 밀당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일지라도 자신의 성향을 알 수 있도록 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이렇게 말이다.

“우영아, 우영이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해. 그런 고집이 형아보다 세기 때문에 우영이에게는 형아와는 다른 방법으로 가르칠 거야. 형아에게는 형아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게 할 거고, 우영이에게는 엄마가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말해줄 거야. 그것들은 꼭 지켜줘야 해. 혹시 새롭게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줘.”


아이일지라도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그 성향의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냐만은, 아이들은 자주 혼나게 되면 자신의 성향이 좋지 못한 성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말 안 듣는 아이’, ‘떼쓰는 아이’, ‘안 하려는 아이’로 생각하는 순간 교육에 문제가 생긴다. 모든 성향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우영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정말 집중하고 잘 빠지는 성향이야. 그런데 아직 어려서 그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 그 일을 찾을 때까지 우리 내공을 잘 쌓아보자. 책도 많이 읽으면서 말이야. 기본기를 잘 다지려면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할 때가 있으니 그건 좀 노력하자.”

결국 ‘매일 책 한 권씩만 읽자.’라고 시작했던 것이 아이의 선택으로 수학, 국어, 영어까지 보태어져 실천해가는 둘째 아이를 보면서 ‘밀당’도 상대의 성향에 따라 강도를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퇴근을 했다. 아이들이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는 것이나, 그래도 생활지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얘들아 이리 와볼래?”

“일 끝내고 퇴근하면서 엄마는 계속 무슨 생각했는 줄 알아?”

“‘화정이 우영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 해주지? 재밌었던 일 들려줘야겠다. 오늘 저녁에는 빨리 끝내고 데이트하자고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데.”

“근데, 너희들 방을 보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어 졌어.”

그렇게 말하니 아이들이 그제야 자기 방을 들여다본다.

“헉!”

“좀, 더럽긴 하네.”

굳이 내가 더럽다고 고함 안 질러도 본인들이 잘 안다. 정신만 차리고 보면.

“엄마, 얼른 정리할게. 그리고 데이트 해야지. 엉?”

그러면서 열심히 정리를 한다. 정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나는 아무 간섭도 참견도 하지 않는다. 정리가 끝났다 싶었을 때, 아이들 방으로 들어간다. 청소를 확인하러 가는 척을 하면 절대 안 된다.

“화정아, 너 가위 어디 있지?”

“어머! 여기가 아까 그 방 맞아? 완전히 변했는데.”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아이들이 아까 왜 그렇게 만들어 놨대? 엉?”

엄청 놀라는 척 정리한 노력에 칭찬해 준다. 그러면서 꼭 덧붙여 말한다.

“애들아, 자신의 물건은 소중하지? 너희가 소중한 만큼 너희들 물건도 소중한 거야. 너희 방도 물론이고. 자신의 방을 사용하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란다. 다음에는 좀 정리하면서 사용해. 알겠지?”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은 참 잘 정리했다. 간혹 또 어지르는 일이 있으면 이렇게 지도할 뿐.



날 보며 신랑은 말한다.

“너 애들하고 연애하냐?”

맞다. 연애하고 있다. 그렇게 키우면 얼마나 편하고, 얼마나 효과적인데.


나는 오늘도

학교에서, 집에서

행복한 연애를 위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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