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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 눈치 보는 어른

by 웃는샘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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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존심이 셌던

이렇게 자존감이 강했던

내가

……

4학년 눈치를 보고 있을 줄이야.

아, 자존심 상해.




신랑이 말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리 눈치를 봐?”


내가 어이없어 물었다.

“내가? 언제? 난 어느 누구의 눈치도 안 봐. 몰라?”


“너 화정이랑 우영이 눈치 보는 것 같아서. 아니야?”


“헛! 말도 안 돼. 내 손안에 쟤들이 있는데, 내가 뭘 잘 보이려고 저 철부지들의 눈치를 보겠어?”


“뭐, 아니면 됐지. 뭘 그리 버럭 하냐?”


그렇게 말하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난 내 의자에 앉았고 노트북을 열었다.



‘눈치? 내가 눈치를 본다고? 뭔가 자신이 없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눈치 같은 거 보는 거야.’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눈치’라는 단어를 쳐 보았다.


[‘눈치’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또는 어떤 주어진 상황을 때에 맞게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 혹은 그에 대한 눈빛"이라는 뜻으로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빨리 파악하고 대인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눈치는 의사소통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눈치는 의외로 좋은 말이었다. 대인 관계를 맺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랜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영어로 눈치를 wits, sense라고 했다.


우리는 주변의 인싸(insider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고, ‘위트 넘치네.’ ‘센스 있네.’라는 표현을 종종 하곤 한다. 이렇게 사용할 때는 꽤 호감 가는 단어인데, 왜 눈치라는 말은 달갑지 않을까?


눈치가 의미하는 바를 두 가지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눈치는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따위를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는 ‘눈치를 채다.’, ‘눈치가 있다 또는 없다.’라고 표현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 인기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과 상대방의 마음 등을 알아채서 결과를 짐작하여 합리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센스가 있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사장님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알아서 맡아 추진하거나, 협력회사의 눈치를 보며 원하는 계약서를 따내는 등 눈치가 빨라 성공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있다. 반대로 상황이나 상대방 마음을 살피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다는 핀잔을 받게 된다. 부모님께서 “어버이날 굳이 안 와도 돼. 너희들 살기 바쁜데, 다음에 보면 돼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알겠어요. 그럴게요.”라고 말해서 서운함을 안겨드리는 우리 신랑은 참 눈치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눈치를 꽤 잘 채는 사람인 것 같다. 간혹 너무 지나쳐서 내 마음과 행동이 불편할 때가 있을 정도이다. 음, 우리 신랑은 후자에 속한다. 너무 센스가 없다. 동거자인 나의 마음 따위를 전혀 살피지 않고, 눈에 보이고, 실제로 들리는 것에만 믿고 따를 뿐.


둘째, 눈치는 ‘생각하는 바가 드러나는 어떤 태도’를 의미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소심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 ‘눈치를 주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상대방 입장에서는 눈치를 보는 것이 될 것이다. 몸이 피곤할 때, 신랑의 안마가 필요했다. 그럴 때, 신랑 옆에서 ‘아, 목이 아프네. 에고 허리야.’라고 말하며 허리와 목을 두드리는 행동은 신랑에게 “빨리 나에게로 와서 어깨를 주물러.”라는 눈치를 주는 행동일 것이다. 물론 곰탱이 우리 신랑은 내 눈치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지만.




그럼, 이상하다. 신랑은 분명 나에게 ‘내가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라고 했다. 나의 거의 모든 행동은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는 일이다. 정리 정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지 않거나, 책을 읽길 바라는 마음에서 굳이 곁에 앉아 재미있는 척 책을 꺼내 보았고, 운동을 하길 바래서 거실에서 신랑과 패드민턴을 치며 신나 했었다. 이렇듯 내가 아이들과 지내는 모든 일과는 눈치를 주는 일에서 시작하여 눈치를 채지 못한 아이들에게 서운해하는 일로 마감한다.


그런데 왜 신랑은 내가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을까? 아이들이 나에게 눈치를 주고 있나?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깊거나 많은 아이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눈치를 주지도 않는 아이들에게 내가 굳이 눈치를 받고 있다는 거야?


눈치는 관계를 잘 맺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나는 ‘바람직한 모자 관계’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크다. 물론 내 아들들도 나와의 관계가 좋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정도가 내가 훨씬 강할 것이다. 남녀관계에서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 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을이 된 자는 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우리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그들을 훨씬 더 사랑한다. 내가 우리들의 관계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들이 걱정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관계에서 나는 을이 되었고, 그들이 갑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는지, 내가 권한 일을 싫어하지는 않는지, 무엇에 관심 있고 즐거워하는지, 잘 크고 있는지, 키만큼 마음도 자라고 있는지 등 늘 안 보는 척 보고 있게 된다.


정말 자존심 상하게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 상황인데도 눈치를 보고 있는 아주 터무니없고 모순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 인정해야겠다.


난 눈치 보는 엄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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