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학부모를 만나 보았다. ‘나도 저맘때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라고 생각들 정도로 요즘의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고 있거나 부모의 행동을 분석하려고 한다.
“부모님은 저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매일 혼내거든요.”
“그렇게 하기 싫다고 해도 무조건 시켜요.”
“놀아주지는 않고 공부만 시켜요. 안 하면 큰일 나요. 때리냐고요? 뭐, 매로 때리진 않아도 말로는 엄청 때려요.”
“제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겠어요. 화를 내서. 너무 무서워서 그냥 가만히 있어요.”
갈수록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이 아이들과 이율배반적 행동을 일삼는 부모들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며 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난 그 사이에 서서, 아이들에게는 “정말? 많이 힘들겠네. 혼내지 않아도 넌 잘할 수 있는데. 그렇지? 참 서운하겠다.” 라며 공감해주는 척 가식 떠는 선생님이자, 집에 가서는 ‘너희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엄마가 뭐 화내고 싶어서 그러겠어? 다 너희들 잘 되라고 그런 거지.’라며 내 아이에게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내보이는 애매한 부모이기도 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이 속담은 미울수록 매 대신 떡을 준다는 말이다. 미운 사람일수록 잘해주고 생각하는 체라도 하여 감정을 쌓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학교 안이나 밖에서 ‘문제를 만드는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이야기다. 실제로 몇몇 아이들이 칭찬과 격려, 위로 등으로 많이 변화한 예를 보기도 했고 직접 경험도 하였다. 그들의 문제적인 행동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기보다는 칭찬이든 위로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때, 그들의 눈빛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그 아이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 등이 사라졌고, 어느새 그 아이는 내 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뜬금없긴 하지만 이 속담에 대해 참, 거짓을 논해 보고 싶었다.
귀납적 추론을 하자면,
1. A가 미웠다. 떡을 더 주니 그 아이는 변했고, 난 그 아이가 좋아졌다.
2. B가 두려웠다. 떡을 더 주니 그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결국 편해졌다.
3. C가 걱정되었다. 떡을 더 주니 그 아이는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갔고, 난 그 아이를 응원하게 되었다.
→ 결론: 밉거나 두렵고, 걱정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떡을 더 주어야 한다.
즉, 이 속담은 옳은 명제라는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생각해보자.
이 속담을 참인 명제로 간주했을 때 대우 명제도 분명 참일 것이다.
(*대우 명제 : ‘A는 B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B가 아니면 A가 아니다’라고 하는 모양의 명제.
그 명제가 참이면 대우 명제도 참이다. A→B (O) , ~B→~A (O))
명제 : 미운 놈에게는 떡을 더 준다. (O)
대우 명제 : 떡을 더 주지 않으면 밉지 않다는 것이다. (O)
→ 결론 : 내가 아이에게 칭찬을 더 해 주지 않는 것은 그 아이가 밉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억지스럽고 사실상 따지고 보면 오류가 있는 결론이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의 부모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혼낸다고 말한다.
‘사랑하니까,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잘못된 걸 얼른 고쳐줘야지.’
‘사랑하니까, 칭찬을 아끼는 거야. 자만해서 발전이 없을까 봐.’
‘미웠다면 그냥 무관심했겠지.’
‘미웠다면 내가 왜 힘들게 화를 내겠어?’
아이와 대화해 보았다.
“엄마, 헷갈려.”
“뭐가?”
“엄마가 날 사랑하고 예뻐하는 건 알겠는데, 혼낼 때는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어? 엄마가? 엄마는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싫어한 적 한 번도 없어.”
“그럼, 그렇게 왜 혼내?”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지. 잘못된 점을 고쳐주는 게 엄마, 아빠가 할 일이잖아.”
“잘못된 점을 고치려면 꼭 혼내야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혼내지 않으면 네가 말을 안 들으니까.”
“그래도 사랑한다면 혼내지 마. 너무 무섭잖아. 엄마는 똑똑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 엄마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투면, 난 이렇게 훈계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넌 장난이었다고 하지만 이 친구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대. 그럼 그건 장난이 아닌 거야. 늘 상대방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렴.”
그래 맞다. 내 위주로 나는 나의 훈계를 사랑이라고 표현했었다. 받는 아이 입장에서 그게 사랑이 아니었고, 상처고 공포였다면 그것을 어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험한 말로 혼내고, 다그치는 그런 부모들을 위해 감히 나는 새로운 속담을 제안해 보려고 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가 아니라,
‘미우나 고우나 떡 하나 더 준다.’라고.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흘겨보는 눈으로, 험한 입으로, 무식한 손으로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