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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 내 마음 들여다 보기

by 웃는샘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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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 사실 제가요.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요.

다른 사람들 마음 살피고 배려한다고

내 마음이 그들의 마음과 다르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만 믿고서

그냥 무관심했었네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여기 붕대와 소독제, 영양제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매일 10분이라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뭐, 간단해요.

너무 딱딱해서 부러진 부분은 붕대를 감아주고,

나쁜 균이 침범한 곳에는 소독제를 뿌려 주세요.

뭐, 괜찮은 곳에도 그냥 내버려 두진 마시고 영양제도 듬뿍 뿌려 주고요.

뭐 어쨌거나, 남보다는 내가 먼저지 않겠어요?




매년 학부모 상담주간에는 상담 신청서를 받는다. 그 신청서에는 상담하고 싶은 내용을 적을 수 있게 공란이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곳에 ‘교우관계’를 우선순위로 적으셨다. 나도 두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엄마이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늘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제일 처음으로 하는 질문이 이것이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친구들하고 잘 어울려 노나요? 수업시간 방해는 안 하지요? 혹시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는 않나요?, 다른 친구들보다 딸리는 게 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정 없는 엄마였던 것이다.


다르게 질문했어야 했다. 적어도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는 특별한 엄마라면, 좀 전의 그런 질문은 나중에, 아니 나중에라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선생님, 제 아이가 발표하기를 좋아하나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신나게 노나요? 집에서는 종이접기를 좋아하는데, 학교에서는 어떤 놀이를 자주 하나요?”

“선생님, 제 아이가 학교 공부는 쉽다고 말했어요. 혹시 수업시간 그런 표현을 했을까 걱정이 돼요.”


지금 이 질문은 아까 질문과 뭐가 다를까?


바로 질문의 기준을 남에게 뒀냐, 내 아이에게 뒀냐 라는 차이이다.


우리 아이의 마음이 요즘 어떤지, 행동은 어떤 성향을 보이는지, 어떤 능력과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우리 아이와 집단의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더 궁금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우리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아이가 친구들을 잘 따르며 어울리고 있는지, 혹은, 선생님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닌지, 관계 속에서 눈치를 좀 볼 줄은 아는지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상담을 했던 수많은 엄마들도 그랬다.



방과 후 업무 담당자라서 공개수업을 직접 계획했었다. 체크할 일들이 많아 방과 후 공개수업을 쭈욱 둘러보고 있었다. 우리 교실에서 영어 방과 후 수업이 있었다. 마침 우리 반 학부모님들이 뒤에 서 계셔서 인사 좀 하고 갈 거라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속상한 얼굴로 나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니, 오셨네요. 수업 잘 보셨어요? 아이들 영어 실력이 하루하루 느는 게 보이네요.”

“선생님, 우리 애가 저렇게 말을 안 해요?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는 데도 벙어리네요. 친구들보다 영어실력도 많이 떨어지는 것 같고. 친구들과 연극을 하는 데에도 표정이 영 굳어 있네요.”


아이 말에 따르면 그날 저녁 집에서 많이 혼났다고 한다. 그럴 거면 영어 방과 후 하지 말라고, 영어학원을 다니자는 둥, 아이는 굳이 내가 검사하는 일기장에 뭘 바라고 썼는지 구구절절이 엄마 험담을 늘어놓았다.


아이의 이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일기장에 적혀있는 그 문구를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엄마는 알 수 없다. 뭘 보러 온 건지. 엄마가 뒤에 있으니까 괜히 부끄러워 말을 못 했던 건데, 친구들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선생님의 질문에 큰소리로 멋들어지게 말 못 했다고 그렇게 화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반 친구들은 다 안다. 내가 영어를 잘하고, 발표도 잘한다는 것을. 내가 영어 좋다고, 실력이 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줄 때는 아무 반응 없더니, 공개수업시간 말 좀 안 했다고 그렇게 구박을 주니 너무 어이없다. 차라리 내 마음을 물어봤으면 내가 왜 그랬는지 알려줄 텐데. 분명 엄마는 창피해서 그런 것이다. 친구들 엄마 보는 앞이라서 내가 더 창피했나 보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자신의 본모습을 먼저 들여다보지 못하는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관계를 중시한다. 그것을 사회성이라고도 말한다. 사회성은 사회, 또는 어떤 단체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관계, 사회성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들만 살펴봐도 딱 그렇다.


“남을 배려해야지.”

“그럴 때는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해.”

“그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야.”

“네가 좋다고 무조건 하는 건 아니야. 남도 생각해야지.”


우리는 사회성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항상 위와 같은 말을 하며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가 원하는 일보다 남이, 사회가 좋다고 말하는 일에 맞춰 선택하곤 한다. 신랑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왜 너는 ‘해야 한다.’라고 늘 말해? 왜 꼭 해야 해?”

“어? 내가 언제 해야 한다고 말했어?”

“계속 그러잖아. 나한테도 ‘지금 청소해야 한다.’, ‘설거지해야 한다.’, ‘애들 운동시켜야 한다.’ 안 그랬어? 애들한테도 말이야. ‘책 읽어야 해.’, ‘정리해야 해.’, ‘피아노 쳐야 해.’…….”

“맞네. 내가 그랬었구나.”

“그런 일들은 모두 해야 하는 일이 아니잖아. 그냥 차라리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괜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니까 더 하기 싫어진다고.”


우리는 언제부터 ‘하고 싶다’보다 ‘해야 한다’를 먼저 선택하게 되었을까?


왜 내 마음부터 살피지 않고, 남과 함께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을까?


왜 내 아이가 자기 자신보다 내 기분을 맞추길 바랬던 걸까?



사회성이 ‘타인에게서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와 상반되는 말은 자기감(Sense of Self), '자신의 대한 생각'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감이 강하면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내적인 억압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일상생활에서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강한 자기감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또한 사회가 자신에게 주는 한계를 직감할 수 있다. 』


『자기감이 흐릿하면 감정이나 생각, 욕구가 강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쉽게 착각하게 되는데 작은 선택부터 큰 선택까지 다른 사람 손에 달려 있으니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과 생각부터 제대로 보기를 권한다.』


종합해 보면, 자기감이 너무 강하면 사회 속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자기감이 약하게 되면,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감은 과해서도 없어서도 안된다는 말로 해석된다.



하루는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늘 눈치를 살피는 우리 첫째는 역시나 내 눈치를 보다가,

“음……, 가족? 엄마? 모두 다인 것 같은데.”라고 했고,


자기감이 평균 이상인 우리 둘째는,

“당연히, 내가 최고로 중요하지.”라고 했다.


나도 내 아이들도 어떻게 사는 게 행복일까? 그래도 자기감이 먼저 제대로 자리 잡고 있어야 남도 살필 줄 알게 아닌가? 배려가 최고의 덕목이라서 가지고 있는 사탕 10개를 자기는 안 먹고 남들 다 줘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난 우리 아이들이 어딜 가서 자신의 좋고, 싫고, 잘하고, 못하는 것 등을 제대로 알아채고, 표현도 해보면서 무슨 일에서든 위풍당당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나도, 우리 아이도,

잠깐이라도 좋으니, 매일매일 자기감을 가져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항상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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