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뭐가 좋은지 아니?
주름살에도,
기미에도,
늘어진 뱃살에도,
숱 없는 머리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거야.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거야.
이렇게 나를, 내 주변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거야.
꿈을 꿨다. 꿈속에서 눈을 떴는데, 고등학생이었다. 늘 그랬듯 7시에 눈을 떴는데, 엄마의 ‘지각이잖아!’라는 호통 소리가 들렸다. 엉겁결에 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곳은 분명 내가 고등학생 시절 살았던 부산의 조금만 아파트였다. 내방도, 내가 좋아했던 노란색 별무늬 베개와 남색 스펀지 요도 정말 그대로였다. ‘고백부부’나 ‘아는 와이프’ 드라마에서처럼 정말 나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이게 사실이라고?’
‘진짜? 정말로? 내가 고등학생?’
옷을 입으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학교 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내가 지금 몇 학년인지, 몇 반인지 등등.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담임 선생님 성함도, 몇 반이었는지도, 학교로 가는 버스 번호도 전혀 모르겠다. 물론 꿈에서도 기억이 안 나서 나는 학반이 적혀있는 교과서를 꺼내 보아야 했고, 엄마에게 버스 번호를 여쭤봐야 했다.
난 꿈속에서 한참을 뛰었다. 지각이었다. 원래 난 고등학생 때 봉고차를 대절하여 통학했었다. 통학시간에라도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려고 부모님께서 그렇게 해주셨다. 그런데 오늘은 지각이라 봉고차를 놓쳐 뛰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난 한 번도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 적이 없다. 늘 봉고차 아니면 아빠가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셨다. 그랬던 아빠는 꿈에서는 안 계셨다. 결국 난 정류장까지 뛰어야만 했고, 그렇게 뛰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생각들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그럼, 내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야?’
‘이제 융통성 있게 공부 좀 하겠는걸.’
이런 생각으로 너무 설레었다. 꿈을 이루지 못했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만큼의 대학과, 직업을 얻지 못했음에 늘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그 자존심을 회복하는 건가 싶어서 그날 꿈속, 달리면서 나는 잠깐 행복했다. 대학생 때 놀 줄 모르는 나는 늘 방학 때마다 부산에서 과외를 했었다. 고3 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보니 수학이 더 쉽게 느껴졌고, 설명하다 보니, 이해력도 더 좋아지는 걸 느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안되던 듣기가, 대학교 1, 2학년 팝송도 듣고, 라디오도 듣고 하니 고등학교 때 그렇게 발악하며 들었던 영어도 곧잘 들리는 것이었다. 그때 ‘아, 돌아가면 공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아줌마로서 좀 더 현실적으로, 융통성 있게 사는 방법도 터득했으니, 나의 인간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질 것이었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 마치 선물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하고 강렬하게.
‘어! 그럼 우리 애들은?’
‘신랑도 다시 못 보는 거야?’
‘다시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해?’
‘결혼식을 올리고, 아기를 낳아 또 언제 기르지?’
정말 못 믿겠지만 난 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신랑보다 더 멋진 남자와 결혼해 보고는 싶은데, 그럼 지금의 우리 아들을 볼 수 없기에 난 다시 신랑을 만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되어야 했고, 지금과 그리 다를 게 없다면 다시 과거를 살며 힘들게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연이어 이런 생각도 했다.
‘내 원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어.’
‘난 18살보다는 38살이 더 좋아.’
‘다시 그만큼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공부도, 육아도, 일도.’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과거로 돌아간 것이 순간 너무 싫었다. 두려웠다. 꿈에서 나는 뛰다가 중간에 철퍼덕 주저앉았고,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깼다.
평소 꿈을 잘 기억 못 하는 내가 이 꿈 만은 뇌리에 꽉 박혀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다.
늦은 저녁 아이들이 잠들고, 나는 맥주를 꺼냈다. 캔맥주를 보자 웃음이 났다. 대학생 때나, 결혼 전에는,
‘술을 왜 마셔? 아, 이해 안 돼.’라고 말하며, 나는 내가 하지 않는 일들에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비판을 섞어가며 나의 행동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거라고 우겼다. 내가 참 많이 변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20살, 졸업하고, 처음 교사가 된 24살, 결혼을 한 27살, 복직했던 30살, 그리고 초등생 두 아이가 있는 지금의 38살.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나이는 헛먹는게 아니다. 나의 융통성과 공감력은 그 어릴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때그때 열심히 살았던 것 때문에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과물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공이 나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난 맥주를 마시며 양희은의 노래 ‘인생의 선물’을 자주 듣는다.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몰랐네.’란 가사가 있는데, 그 가사를 듣고 있으면, 지금의 나이 듦이 뭔가 대단한 듯 느껴지는 게 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지금은 알고 있다고 ‘어때, 나 멋지지?’라며 완전 자신감 뿜 뿜이다.
기를 싸매고 공부도 해보았고, 시험을 망쳐 꿈을 버려야 했던 좌절도 겪어봤고,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었던 곳에서 살아남을 거라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보았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긴장도, 울기도 많이 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도 많이 냈었다. 남들 다 한다고, 결혼은 당연지사로 여겨 굳이 아빠 퇴직 전에 급하게 결혼식도 올렸고, 생각지 못하게 찾아온 첫째 아이 입덧으로 생전 처음으로 피도 토해봤다. ‘첫째 아이처럼 아이는 다 순하고 예쁠 거야.’라는 착각에 빠져 신랑에게 협박까지 하며 둘째를 가졌고, 첫째 아이와 정반대의 성향인 둘째를 보며 “넌 도대체 어디서 왔니?”라고 말하며 솔직히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는 꿈도 꿨었다. 둘째를 키우며 명상도 해보았고, 불자도 아닌 내가 명상을 위해 사람들 아무도 없는 절 법당에 매주 들리기도 했었다.
이제는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남들 눈에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어른이 문제였다는 것도 배웠고, 부모나 선생님 중심으로 가르칠게 아니라, 아이 맞춤형, 아이 중심으로 가르쳐야 효과가 있다는 것도 경험하였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눈가, 입가에 잔주름은 늘어간다. 내 뱃살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생각을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절대 해보지 못했고, 머리 빗질 후 빠진 머리카락 한올을 붙잡고 울며 불며 이별을 고할 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난 지금이 좋다. 꽤 괜찮은 것 같다.
늘어나는 주름만큼이나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늘어나는 뱃살 면적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예전보다 많은 걸 생각하고,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인생의 선물 - 양희은>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갯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이 가사처럼,
난……, 나이 든 지금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