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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구운 계란 내음

아가 발가락 내음

미용실에 왔다. 특이하게도 구운 계란을 주셨다.



아무 생각 없이 계란을 먹기 위에 손을 뻗었다. 뜨거웠다. 견디려고 해 봤다. 달궈진 계란의 뜨거움을 견뎌 보겠다고 두 손으로 계란을 가둬 놓았다. 결국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계란을 고이 내려 놓았. 두 손에는 달궈진 계란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아직 뜨거운 게 가시지 않아서 호호- 불며 손을 식혔다.


손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 듯 해서 코를 가까이 대 보다. 고소하기도 하고, 구수하기도 한 냄새가 풍겼다. 어떠한 대상이 떠오르는 듯 했다. 아마도, 이 냄새와 가장 비슷한 무엇이겠지.


생각을 거듭했다. 이 구수한 냄새와 어떤 대상이 가장 닮았을까.


떠올랐다.




아가 발가락



아가 발가락이 떠올랐다. 꼼지락 거리는 자그마한 아기의 발가락과 구운 계란의 냄새는 서로 다. 모락모락 피어 오른 구운 계란의 내음. 보는 사람마저 환한 미소를 안겨 주는 조그마한 아기. 그런 아기가 꼬물거리는 자그마한 발가락.


달궈진 계란의 내음은 따뜻했다. 미운 감정 하나 없이 티 없이 맑은 아가 역시 따뜻하다. 나도 그랬겠지. 괜스레 그리워졌다.


미운 감정 하나 없는 티 없이 맑은 아가.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다. 언제 이리 훌쩍 자랐을까. 나는 아직도 맑을까, 아님 식은 계란 같을까.


구운 계란의 맛은 짭짤했다. 딱 적당한 만큼의 짠 맛. 딱 적당했다.


그런 계란과 내가 갑자기 겹쳐 보였다. 내가 처음 계란을 품었을 때에는 미완성이었다. 연약한 껍질에 둘러싸여 그 속은 아슬하게 출렁거렸다. 조금만 긁혀도 금방 흠집이 생겼다. 보이는 만큼 연약한 나의 겉면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점차 껍질은 웬만한 타격에는 상처 하나 남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오히려 부딪히면 누군가를 다치게 할 만큼. 아슬하게 출렁거리던 속도 점차 익어서 단단해졌다. 그러다 보니 내 성격은 점차 변했다. 조금만 대화를 나누면 드러나는 단단한 겉모습처럼 내면도 단단해졌다.


하루는, 단단해지는 게 성장한 줄 알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얇은 보호막에만 쌓여 있던 그때의 나는 단단해지기를 원했다. 단단한 나를 원하던 그때의 내가 그리워지는 이 우스운 상황.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원하던 모습이 되었다. 그러니 이 우스운 상황을 잘 넘겨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었으니.


사실,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내 모습인데. 스스로 받은  상처를 조절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 성장했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고민해 본다.


타격을 견뎌내고 스스로 흠집을 다스릴 수 있게 된,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지금까지 참 잘 살아 왔고, 잘 살고 있어요.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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