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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어제는 좋지 못한 날.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상대했다.



어제는 나에게 우산 하나가 필요했다. 저 수많은 우산들 중 단 하나의 우산이 필요했다. 어떤 우산이든 반가워할 자신이 있었다. 그저, 우산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위태로웠던 나의 어제는 지쳤다.



신 발 가 게

옷 가 게

자 전 거 할 아 버 지



세 명의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신 발 가 게

묵직한 고민거리가 해결되어서 나름 후련함과 시원섭섭한 감정을 품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 가게를 들렸다가 나왔다. 그 옆 가게는 신발 가게였다. 곧 폐업을 하게 되어 모든 신발이 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마침 디자인이 괜찮았던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가게로 들어 갔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관심 없이 돌아서야 했다. 신발 가게로 들어간 그 순간부터 나의 어제는 위태로웠다.


바깥에 진열되어 있는 신발들 중 절반은 천으로 덮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천을 걷으며 덮어져 있던 신발들을 확인했다. 그 사람들을 보고 우리 엄마도 그렇게 신발을 살폈다. 다 끝나 가는 여름이었지만 남은 여름 동안 막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딸에게 사 주려 했다.


같이 신발을 보고 있던 중 사장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이렇게 보면 안 돼요!
안에 들어 가서 보세요.
다 안에 있어요.
신발이 반 짝밖에 없어요.
안에 들어 와서 보세요.



사장은 신발이 반짝밖에 없다는 둥 혼잣말하기 바빴다. 이때부터 내 기분은 엎질러졌다. 천 걷지 말라고 적어 두시던가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천을 걷어서 확인했는데 왜 하필 우리가 걷었을 때 이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천, 이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왔을 때 엄마가 말렸다. 나는 저 대사를 내뱉지 못했다. 엄마는 안에 다 있나요? 물었다. 사장은 네, 다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사장은 내 손에 있던 신발을 뺏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미 엄마 손에 있던 신발을 세게 뺏었던 모습을 봤다. 나는 그 신발을 곱게 주고 싶지 않아서 손에 있던 신발을 놨다. 툭, 힘 없이 신발이 진열대 위로 떨어졌다. 사장은 나를 봤다. 나도 사장을 봤다. 사장은 말 없이 신발을 다시 들어 제자리에 두었다. 다행히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엄마는 표정이 어두워진 나를 말리며 신발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 갔다.


간혹 나는 화가 나면 나의 계절만 무더위가 된다.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가.

늘 참고 살았던 나는 성인이 되면서 참아야만 하는 여유를 잃었다.


신발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바깥에서 골랐던 신발을 가리키며 내 사이즈가 있는지 물었다. 사장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른 신발을 들어도 똑같았다. 세 번째 신발을 들었을 때 없다니까, 라고 말했다. 다소 가벼운 어투로. 나는 아까처럼 신발을 툭, 내려 놓고는 엄마에게 말했다.



있는 게 없대.



그리고 엄마와 밖으로 나왔다. 속으로 바랐다. 더 빠른 시일 내로 폐업하기를.



옷 가 게

곧 바뀔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어느 옷 가게로 들어갔다. 한 직원 분께서 엄마와 나를 따라 다녔다. 옷을 고르려고 할 때쯤 직원 분께서 옷 하나를 들어 보이시며 나에게 물었다. 이 옷 잘 나가요. 순간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가 보아도 예쁘지 않은 옷이었고, 재고를 갈아치우기 위해 팔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니요, 하고 다른 옷을 살폈다. 그러자 다른 옷을 또다시 골라 주셨다. 나는 연이어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내 마음에 들어 왔던 옷은 없었다. 대신 엄마는 옷 하나를 구매했다. 앞전에 어느 분은 상의와 하의를 여러벌 구매하셨다. 그 손님들이 가게를 나설 때 직원 분은 상냥한 목소리로 최대한 친절하게 그 손님들을 배웅했다.


우리가 가게를 나설 때에는 아니었다. 상의 하나였지만, 적은 가격은 아니었다. 그 직원 분은 가게를 나서는 엄마와 나에게 아무런 인사도 없었다.


이름 있는 브랜드의 옷 가게였음에도 불구하고 재고 팔이를 당할 뻔했다. 돈이라는 액수로 사람을 판단하는 직원을 만나기도 했고.



자 전 거 할 아 버 지

횡단보도에 서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초록불로 바뀌어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자전거 바퀴에 발이 밟힐 뻔했다.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려는데 자전거의 주인이셨던 어느 할아버지께서 엄마와 나에게 소리쳤다.



좀 비켜!



자전거가 올라 올 수 있는 경사가 있는 곳과도 거리가 있었고, 심지어 자전거 도로도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핸들을 우리 쪽으로 꺾은 탓이었다. 결국, 아침부터 사람들을 상대하며 참아온 내 화가 조금씩 터지려고 했다. 참으려 했다. 어르신이셨고, 엄마도 계셨으니. 할아버지가 다시 읊조렸다.



왜 여기 서 있는 거야.



나는, 터졌다.



횡단보도면 자전거에서 내려서 오셨어야죠!



어르신은 무슨 말을 하시려는 듯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멈추지 못했다.



좋게 좋게 말씀하세요!



어르신은 나를 두어번 보시더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셨다.



어제 하루는 너무나 힘들었다.

집에 와서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더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 반성해야 할 부분을 고민했다.



우선, 신발가게부터. 곧 폐업을 하게 되니 마음이 심란하신 탓에 그러셨을 수 있다.

두 번째, 옷가게. 자신의 가게 매출을 조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에 그러셨을 수 있다.

마지막, 자전거 할아버지. 혹시나 사람을 다치게 할까봐 그러셨을 수도 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나는 또다시 나의 잘못만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나에게는 없는, 내가 하지 않은 잘못도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재주를 가졌다. 내가 가장 버리고 싶어했던 내 모습인데, 나는 또 이러고 있구나.


다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게 되면
그 상황에서 상처 받은 나는 어디에 있지?


그리고 다시 외쳤다. 그 순간을 견디고 있는 내가 중요하다. 힘들었던 어제 만큼 오늘은 푹 쉬었다. 오랜만에 주말을 만끽했다.



별로인 이 세상에서 
나는 ‘별’로 살아간다.



다짐을 해도 간혹 삐끗하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 깨우치라는 의미라고. 


삐끗하더라도, 나는 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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